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동네 하천을 걸었다.
그저 운동 삼아 집 근처 길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물소리가 나지막이 들리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던 곳.
처음엔 아무 기대도 감정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그 길을 따라다녔다.
그냥 조용했고 가까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천이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누군가가 살고 있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고양이였다.
어느 순간 나타나서 풀숲 사이로 사라지는 고양이들
그다음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까치, 참새, 직박구리.
나무 위에서 상쾌하게 아침을 여는 새들.
나는 이 하천과 길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알아갔다.
왜가리는 하천에서 긴 목을 숙이고 물고기를 노렸고
겨울이 오자 청둥오리 떼가 무리 지어 날아들었다.
돌 틈엔 메기, 얕은 물엔 민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뱀이 있었고, 또 자라가 있었으며,
심지어 꿩도 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생명을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이 길이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는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입구 근처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렸다.
“저어새가 새끼를 키우고 있어요. 함께 지켜주세요.”
저어새라니. 천연기념물 205호, 세계적으로 귀한 새.
그 새는 내가 걷던 하천에 살았다.
내가 보고 지나쳤던 풍경 하나하나가
더 이상 그냥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하천은 누군가의 집이었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나는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이 변하고 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진입로에는 펜스가 세워졌고 토목 공사 안내문이 붙었으며, 자주 다니던 길이 폐쇄되었다.
며칠 후 매년 벚꽃이 흐드러지던 길이 듬성듬성 비어져 있었다.
오래된 나무들이 대부분 베어져 있었고, 보행로에는 굴삭기 바퀴 자국이 깊게 남아있었다.
그 자리에는 그동안 살아왔던 수많은 생명들의 흔적도 사라지고 있었다.
언젠가 왜가리가 조용히 서있던 얕은 물가도,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던 풀숲도
모두 공사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막막한 기분이다.
나는 그날 이후 하천을 걷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름을 불러주고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기로 하였다.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분명히 있었음 말해두기 위해서 걷고, 보고, 기억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사라진 것들 위로 새로운 포장재가 덮이고
하천의 일부 구간은 다시 열렸다.
그곳은 단정하고 편해졌으며 밝고 깨끗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이 어딘가 불편하다.
무언가 잊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어새, 왜가리, 민물고기, 자라, 풀숲 등 나의 재미와 이야기가 모두 어딘가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이 동네의 평범한 하천이
지켜지고 보존되어야 할 장소로 느낀다.
모두가 살았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오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