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각자의 짐을 지고 있다.

by 리박 팔사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1. 마트의 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

양손에 시장바구니를 들어서 손이 마비될 것 같았다.

“다 버리고 갈게.”라는 농담을 겨우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유모차를 밀며 통화하는 아이 엄마.

짐을 메고 배달 중인 기사님.

한 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과일을 들고 있는 어르신이 스쳐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다들 무거운 걸 들고 사는구나.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2. 육아의 짐


딸아이도 어엿한 초등학생이다.

스스로 양치하고, 가방도 메고 학교를 간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조만간 육아가 끝나는구나.” 물론 나만의 생각이었다.


아침 등교 준비는 언제나 전쟁이다.

“얼른 일어나자. 학교 늦겠다.”

“밥 먹어야지, 준비물은 다 챙겼어?”


딸아이는 나의 말과 상관없이 최대한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왜 내가 지각한 사람처럼 정신이 없고, 왜 우리가 학교에 늦은 걸까?”


어느 날 밤, 딸이 조용히 이불속에서 물었다.

“아빠, 나 이상한 거 아니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육아에 있어서 몸이 덜 힘든 만큼 마음이 힘들 시기로 접어들고 있구나.


3. 업무의 짐


출근은 안 하지만 할 일은 많다.

학교 보내고 빨래 돌리고 고지서를 확인한다.

아침 운동 이후에 부랴부랴 점심 먹고 나면 정신이 빠져있다.


하루가 끝나가는데 할 일들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에 해결한 거 같은데 자꾸자꾸 비슷한 일들이 생긴다.


결국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다.

그래도 하나하나 해치우고 나면 약간의 자존감과 활발한 기분이 생긴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나를 지치게 하지만

그걸 또 해내면 나를 버티게 한다.


4. 관계의 짐


사람 사이에서는 말보다 눈치가 무겁다.

“오늘 그 말... 괜찮았나?”

답장이 늦으면 속으로 삼십 가지 이상의 해석을 한다.


내가 뱉은 말보다 상대의 무응답을 더 오래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피곤한 순간이 생긴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렇게 신경 쓰는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가?”

“응. 유난스럽지, 그래도 괜찮아.”

뜬금없이 오랜만에 궁금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한다.

그리고 또 반복한다.


어느새 마음이 풀린다.

관계의 짐은 무겁지만 서로 안부로 가벼워지더라.

5. 눈에 안 보이는 짐


하루가 끝났는데도 내 머릿속은 퇴근을 안 한다.

몸은 누워있는데 생각은 자꾸만 난다.


“오늘 제대로 한 게 있긴 했나?”

이미 끝난 일을 되새기고 못한 일을 먼저 걱정한다.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았는데 찝찝한 날이 있다.

“아 이건 마음과 시간의 짐이구나.”

“오늘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이 짐은 어디에 두기도 애매하고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잠들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일어나서도 그대로 있다.


그냥 생각한다.

“잘하고 있나? 잘하고 있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마음은 늘 복잡하지만

그렇게 살아낸 하루도 좋다.


6. 결론: 누구나 각자의 짐을 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내 짐을 들고 걸었다.

나의 성격 중 하나는 내 짐은 최대한 스스로 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느리고 조금 낑낑거렸고 조금 헉헉댔으며, 종종 짜증도 내지만 결국 하루를 별일 없이 살아냈다.


괜찮다. 비생산적이어도.

크게 머 안 하고 살아낸 하루. 이제 내일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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