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
양손에 시장바구니를 들어서 손이 마비될 것 같았다.
“다 버리고 갈게.”라는 농담을 겨우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유모차를 밀며 통화하는 아이 엄마.
짐을 메고 배달 중인 기사님.
한 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과일을 들고 있는 어르신이 스쳐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다들 무거운 걸 들고 사는구나.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딸아이도 어엿한 초등학생이다.
스스로 양치하고, 가방도 메고 학교를 간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조만간 육아가 끝나는구나.” 물론 나만의 생각이었다.
아침 등교 준비는 언제나 전쟁이다.
“얼른 일어나자. 학교 늦겠다.”
“밥 먹어야지, 준비물은 다 챙겼어?”
딸아이는 나의 말과 상관없이 최대한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왜 내가 지각한 사람처럼 정신이 없고, 왜 우리가 학교에 늦은 걸까?”
어느 날 밤, 딸이 조용히 이불속에서 물었다.
“아빠, 나 이상한 거 아니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육아에 있어서 몸이 덜 힘든 만큼 마음이 힘들 시기로 접어들고 있구나.
출근은 안 하지만 할 일은 많다.
학교 보내고 빨래 돌리고 고지서를 확인한다.
아침 운동 이후에 부랴부랴 점심 먹고 나면 정신이 빠져있다.
하루가 끝나가는데 할 일들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에 해결한 거 같은데 자꾸자꾸 비슷한 일들이 생긴다.
결국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다.
그래도 하나하나 해치우고 나면 약간의 자존감과 활발한 기분이 생긴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나를 지치게 하지만
그걸 또 해내면 나를 버티게 한다.
사람 사이에서는 말보다 눈치가 무겁다.
“오늘 그 말... 괜찮았나?”
답장이 늦으면 속으로 삼십 가지 이상의 해석을 한다.
내가 뱉은 말보다 상대의 무응답을 더 오래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피곤한 순간이 생긴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렇게 신경 쓰는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가?”
“응. 유난스럽지, 그래도 괜찮아.”
뜬금없이 오랜만에 궁금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한다.
그리고 또 반복한다.
어느새 마음이 풀린다.
관계의 짐은 무겁지만 서로 안부로 가벼워지더라.
하루가 끝났는데도 내 머릿속은 퇴근을 안 한다.
몸은 누워있는데 생각은 자꾸만 난다.
“오늘 제대로 한 게 있긴 했나?”
이미 끝난 일을 되새기고 못한 일을 먼저 걱정한다.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았는데 찝찝한 날이 있다.
“아 이건 마음과 시간의 짐이구나.”
“오늘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이 짐은 어디에 두기도 애매하고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잠들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일어나서도 그대로 있다.
그냥 생각한다.
“잘하고 있나? 잘하고 있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마음은 늘 복잡하지만
그렇게 살아낸 하루도 좋다.
나는 오늘도 내 짐을 들고 걸었다.
나의 성격 중 하나는 내 짐은 최대한 스스로 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느리고 조금 낑낑거렸고 조금 헉헉댔으며, 종종 짜증도 내지만 결국 하루를 별일 없이 살아냈다.
괜찮다. 비생산적이어도.
크게 머 안 하고 살아낸 하루. 이제 내일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