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관계

by 리박 팔사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1. 꺾인 나무


식목일에 누군가 심은 작은 나무

“2024년 4월 5일”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꽂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사진도 찍었겠지

누군가의 기념이자 다짐인 나무였을 것이다.


며칠 후, 그 나무가 꺾여 있었다.

일부러 그랬을까, 무심한 발길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냥 걷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만 머물면 나도 같이 꺾일 것 같아서


2. 걷는 중 마주친 것들


마트 옆 광장을 지나고

빛바랜 벤치가 놓인 산책길을 지나

그늘진 나무들 아래를 조용히 걸었다.


그 길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말은 없지만 계절마다 풍경이 변한다는 사실이

사람보다 더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날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3. 막혀 있는 길


조용했던 공원이 어느새 공사장이 되어 있었다.

“공사 중 진입금지”

위험하다는 테이프가 길을 막고 있었다.


한편에는 “멸종위기 저어새 보호 중”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

그 아래 부러진 저어새 표지판이 벤치 위에 누운 듯 놓여 있었다.


지켜달라는 말과 지켜지지 않은 현실이 나란히 있었다.

반복되는 풍경 앞에서 ‘자연보호’라는 말도 점점 공허해졌다.


4. 도시가 되기 위한 조건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질서 정연하게 쌓여 있었다.

잘린 단면이 너무 매끄러워 서늘했다.


한쪽엔 깃발들이 꽂혀 있었다.

노란색, 빨간색. 흙과 나무에 선명한 인공의 표시들


그 자리에 는 이미 누군가의 도면 속에

새로운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 단지.

저 건물도 이런 과정을 거쳐 세워졌겠지.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이렇게 무력한 기분이구나.”


5. 결론: 관계의 착각

나는 오늘도 걷고, 보고, 기억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끔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더 잘 다듬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웃긴 착각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짓는 건물보다 오래 남고 말없는 방식으로 기억을 되짚는다.


결국, 자연을 통제하지 말고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그 결을 걷는다.


나무가 다시 자라는 시간처럼, 나도 천천히 걸어본다.

그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군자의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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