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닦고, 다시 놓는다.

by 리박 팔사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1. 틀 안의 생활과 문제 인식


계획된 신도시와 설계된 아파트 단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이미 정해진 평면의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있고 안방에는 붙박이장이 있다.

모든 게 거의 거기서 거기다.


기획부터 시공까지 나의 수요와는 상관없이 설계되고

완성된 공간 속에서 나는 거주자보다 사용자에 가깝다.

그동안 틀을 바꿀 수도 선택할 수도 없었기에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 했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집 안과 밖, 실내공간과 생활환경에서라도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2. 닦는다, 정리한다, 회복된다.


복잡하거나 답답한 날이면 우선 청소부터 한다.

욕실 타일을 박박 문지르고 창틀 먼지를 털고 싱크대 물때를 닦는다.

복잡한 머릿속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청소는 나의 공간에서 관리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방식이다.

스마트 도시, AI 건축, 주거 서비스플랫폼 보다

먼지 없는 창틀 하나, 반짝 거리는 거실 바닥이 오늘의 마음을 훨씬 편안하게 해 준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은

단순한 행위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사지 않고 바꾸는 힘


큰 가구부터 작은 소품까지 있는 가구들을 다시 보았다.

천천히 하나둘씩 낯설게 보기 시작한다.

책상을 창문 옆으로 옮겨보고 소파 방향을 바꾸고 수납함을 거실로 가져온다.


가구를 여기저기 옮겨본다.

그것만으로도 집이 달라졌다.

같은 평면에서 평소에는 안 보이던 낯섦이 생긴다.


신도시도, 아파트도, 평면도 바꿀 수 없지만 나의 방 동선은 바꿀 수 있다.

재배치가 오히려 능동적으로 보이고 내가 하고픈 것들을 반영한다.


4. 결론: 다시 닦고, 다시 놓는다.


사는 곳은 내가 만들지 않았지만

사는 법은 내가 만든다.


가끔은 계획에 설계에 저항하듯

진공 상태의 공간을 살짝 또는 거침없이 흔들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아도

내게는 나의 관점으로 보고 행동하는 일이다.


사소한 걸레질, 미묘한 배치 변화.

반복 속에서 나는 내 공간과 삶의 결을 파도처럼 타본다.


다시 닦고 다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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