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by 리박 팔사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1. 쇼핑을 멈추다.


오랫동안 쇼핑을 사냥처럼 했습니다.

지금 안사면 가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대단한 결심을 한 듯이 단호하게 결제하였습니다.

택배 상자를 뜯는 순간에는 항상 떨렸습니다.

정작 그 상품을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포함할지는 고민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상품에 맞췄습니다.

어느 날부터 그냥 쇼핑을 하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세 달째가 지났습니다.

요즘에는 커피도 웬만하면 집에서 내려 마시는데 직접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처음엔 허전하였지만 점차 꼭 무엇인가를 사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2. 중고가 새롭다.


책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전엔 신간을 사야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우선 책장을 채우는 일이 중요했고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몇 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중고서점을 가게 되었습니다.

우선 가격이 합리적이고, 잊고 있던 책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더 좋아졌습니다.

누군가 읽던 흔적이 남아있는 책은 밑줄, 접힌 모서리, 메모 등으로 새 책 보다 따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전 소유자들의 흔적을 통하여 나의 의견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더욱 새롭고 풍부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3. 다시, 씁니다.


사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후, 처음에는 허전했고 조금은 불편했습니다.

다만 점점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입지 않았던 재킷, 애매한 색의 티셔츠, 버릴까 말까 망설이던 텀블러 등.

예전 같았으면 버리거나 정리함에 넣었을만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낯설게 보고 다시 재활용하는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재킷은 베란다에서 인디고로 염색을, 티셔츠는 장식으로 활용, 텀블러는 연필꽂이가 되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다르게 쓰이고 나니 이상하게 훨씬 정이 갑니다.

잊고 있었지만 각각 상품에는 내 시간과 선호가 있었고 그 추억들 덕분에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4. 결론: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요즘에는 사지 않으니 생각이 단순해졌고 하루가 조금이나마 느긋하게 흐릅니다.

나의 부족한 것을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어쩌면 오늘 같은 시대에는 사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에서 가장 창의적인 삶이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손에 쥐고 있었지만 잊고 있던 것들이 이제야 내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오늘도 덜 사면서도 더 많이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사지 않고 지나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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