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의 계단은 다양합니다.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던 시멘트 계단, 오래된 아파트 입구의 계단, 그리고 공원 산책길에서 만나는 돌계단까지.
계단은 언제나 내 발걸음의 속도와 호흡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나에게 계단은 멈춤과 전진 즉, 포기할 줄 알고 다시 시작하는 순간을 선사합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저 멀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과 함께 아래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시야가 펼쳐집니다.
내려갈 때면 그 바람과 시야의 소중함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항상 깨달음은 늦는 편이지요.
백화점이나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나는 잠시 기계에 몸을 맡깁니다.
발을 올리는 순간, 낯선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이 특유의 리듬이 신기합니다.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위층으로 혹은 아래층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편리함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재미있는 풍경도 펼쳐집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개미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앞사람의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올라가려고만 하는 경쟁은 사람의 생각을 좁게 만드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엘리베이터는 나만의 작은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잠시 외부의 소음과 시선이 차단되고 오직 나와 그리고 낯선 사람들만 존재합니다.
살짝 느껴지는 속도감은 짧지만 강렬합니다.
층수 표시 등이 빠르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보면 나는 다음 목적지를 고민합니다.
가끔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예상치 못한 짧은 교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눈이 마주치거나 아이들의 해맑은 질문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됩니다.
닫힌 문이 다시 열리고 원하는 층에 도착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인생에서는 어떤 공간으로 들어가거나 위 또는 아래로 이동하는 순간이나 사건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쇼핑몰에서 층과 층을 연결하는 거대한 미끄럼틀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났습니다.
굳이 복잡한 계단이나 느린 에스컬레이터 대신 미끄럼틀을 타고 미끄려져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타본 적은 없습니다.
대신 어린아이들이 슈웅하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 세상의 모든 복잡함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가는 속도감과 아래 도착했을 때 그 짜릿함을 기억하고는 있습니다.
층간 이동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즐겁습니다.
가끔은 한 층 한 층이 아니라 낙하하는 것 또는 질러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대형 미끄럼틀 등 미래에는 어떤 연결 공간이 또 나타날까요?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내가 원하는 층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물처럼 이동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층의 개념이 무의미해지고 공간과 공간이 마치 물 흐르듯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세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층과 층을 연결하는 공간들은 나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해 왔습니다.
모든 연결 공간들은 나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선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이 공간들은 때로는 노력과 인내를 요구했고, 때로는 한없는 편리함을 안겨주었으며,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으로 나를 미소 짓게 했습니다.
그것들은 나의 삶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매일의 감정을 담아내는 소중한 통로였습니다.
결국 층과 층을 연결하는 공간은 위로 향하는 나의 꿈과 희망,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모든 연결의 순간들이 모여, 나의 삶이라는 거대한 여정을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