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아이와 함께 걷다 보면 문득 멈춰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시멘트와 아스팔트도 가득 찬 무의미하고 익숙한 풍경인데 아이는 그 속에서 무언인가를 발견합니다.
아이의 질문은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합니다.
그 풍경들은 아이에게만 보이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그 세계를 보았습니다.
다만 나는 어른이 되며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어느 날 아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빠, 저 구름은 하트 모양이야.”
나는 무심히 올려다보다가 정말로 구름이 하트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른이 된 나는 구름을 보면 “비가 올까”만 떠올렸지만 아이의 눈을 통하여 나는 오랜만에 구름의 모양을 가지고 놀아봤습니다.
밤 산책을 할 때 아이는 달을 찾습니다.
초승달을 보며 작다라고 하고 보름달을 보며 크다라고 합니다.
“달에는 토끼가 정말 있어?”라는 질문에 함께 웃습니다.
몇 년 만에 뉴스로 슈퍼문, 블루문이라고 해야 보는 달이었습니다.
다만 아이의 말 한마디로 달을 다시 나의 감정과 연결해 보았습니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지나가자 아이가 소리를 지릅니다.
“비행기다!”
흔한 자동차처럼 비행기를 보아도 감흥이 없던 나와 구름 위를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아이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간극을 느꼈습니다.
하늘을 의식적으로 올려다봐야겠습니다.
길가에서 아이는 개미떼를 발견하고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아빠! 얘네 어디로 가는 걸까? “
아이의 눈에 개미는 재미있는 만화의 주인공이고 보도블록 틈은 거대한 협곡입니다.
나는 무심코 지나치는 길 위에서 아이는 거대한 모험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아파트 창가에 매미 한 마리가 달라붙어있었습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워 나는 얼른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소리에 놀라기는커녕 창가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와, 매미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
나에게는 여름을 더욱 덥고 답답하게 만드는 소음뿐이었는데 아이에게는 매미는 집까지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었습니다.
비가 온 뒤 분수대 근처 아이가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펴고 입에 댑니다.
개굴개굴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는 분수대 안에 숨은 작은 생명을 찾아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여기도 여전히 숨어 있는 친구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함께 걷다가 나는 그냥 사람들 무리에 묻혀있는 아이의 친구를 미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멀리서도 단번에 친구를 알아보고 “친구야.”하고 손을 흔듭니다.
나는 아직도 찾지 못하였는데 아이는 벌써 달려가 친구 옆에 서 있습니다.
길을 걷다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친구 부모님을 발견합니다.
나는 굳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지나치려 하였지만 아이는 가까이 다가가 밝게 인사를 하고 본인의 근황을 얘기합니다.
어떤 날은 친구의 할머니를 만나기도 합니다.
아이에게는 친구의 부모님, 조부모님까지도 함께 어울리는 이웃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 요구르트 아주머니, 동네 커피집 사장님 등 어른이 된 나는 그들을 잘 보지 못하거나 필요할 때만 의식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들을 지나칠 때마다 꼭 인사를 합니다.
작은 목소리로 건네는 인사가 도시의 공기를 좀 더 체온에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이들은 단지를 든든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조용한 수호자이자 따뜻한 이웃들입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들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구름 한 조각, 창가의 매미, 길가의 개미, 그리고 동네의 얼굴들.
어른인 나는 무심히 지나쳤지만 아이는 그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며 그것들을 익숙하고 의미 없는 풍경이라 부르며 잊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눈을 빌려 다시 보니, 그 풍경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삶은 거창한 증명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드러납니다.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친구이고, 모든 만남이 반가운 인사이며, 모든 사물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이 덕분에 잃어버린 세계를 조금씩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손해이고 무엇이 이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