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다만 자유는 새로운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해내야 할 것 같았고 무언가로 이 시간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자전거를 꺼내 타보았다. 페달을 밟자 멈춰있던 세상이 움직이는 듯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자전거 위에서 나는 또다시 목적지를 정하고 있었다.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고 무작정 뛰어보았다. 처음에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금방 멈춰 섰지만 오기가 생겼다. 조금씩 러닝 실력이 좋아졌다.
어제보다 더 멀리, 조금 더 빨리 뛸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 앱에 찍히는 숫자가 나아지는 것을 보며 만족감이 들기도 하였다.
기록이 좋아질수록 숫자에 집착하였다. 또 다른 숙제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하였다.
비장한 마음가짐과 화려한 장비, 대단한 기술은 필요 없었다.
그저 운동화 한 켤레를 신고 계절 상관없이 나가는 것, 그뿐이었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생각이 흘러가게 놔두었다.
나를 버려둔 채 치열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니, 내가 원했던 것이 궁금해졌다.
지루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서고 커피를 내리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등 구체적인 행위들을 반복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세상이 추천하는 스마트한 방식들은 오히려 나의 일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운동 하나를 하더라도 스마트워치가 나의 걸음을 재촉하고 앱은 어제의 기록을 넘어서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또 다른 과제나 미션이었다.
결국 나는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오늘의 걸음을 걷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행위도 사실 좋은 날씨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반복, 그것이 주는 안정감, 유행에 민간 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 또한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오랫동안 행복은 결승점에 있다고 믿었다.
더 나은 성취, 더 높은 자리, 남들의 인정 등을 손에 넣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경주를 포기할 때, 행복은 완전히 잃어버릴 거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행복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조용한 길 위에서 비로소 나는 나 자신과 마주쳤다.
처음에는 애써 외면했던 후회와 불안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였지만 도망치지 않고 직면하였다. 예상보다 괜찮았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 자신과의 대화에 익숙해졌고 비로소 주변의 환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벚꽃에서 혹독한 계절의 기다림을 배우고 느리지만 갈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어가는 자연에서 꾸준함을 배웠다. 행복은 위대한 스승이 아닌 길 위의 사소한 존재들이 건네는 작은 깨달음 속에 있었다.
결국 내가 찾은 행복은 인생에 한번 오는 강렬한 임팩트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빈도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유의 결과가 아니라 인식의 과정이었다.
나는 한동안 증명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치던 세상 속에서 나 또한 성과와 기록으로 나 자신을 입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나를 소진시켰을 뿐이었다.
걷기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 나를 증명하는 방법이 눈에 띄는 성취만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이어가는 데 있다는 것을 화려한 도약 대신 평범한 걸음을 내딛는 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흐름을 잃지 않는 일이야말로 정직한 증명이었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의 흐름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세 살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작은 대응이며 동시에 나를 지켜내는 다짐이다.
오늘도 나는 일어나고 길 위에 나선다.
이 한걸음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모여 나의 삶이 된다.
일상과 생활, 순간이 삶으로서의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