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도시계획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신도시가 막 생겨났을 때, 외식은 곧 가족 행사였습니다.
주말이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갈비 가든을 찾았습니다.
넓은 홀과 넉넉한 좌석, 그리고 달콤한 양념 냄새가 가득한 그곳은 온 가족이 함께 하기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갈비 한 대를 뜯으며 웃고 떠들던 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을 넘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신도시의 계획가들이 식당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지만 그 공간을 가족의 주말로 활용한 것은 우리 가족의 발걸음과 웃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조금씩 혼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용돈을 받기 시작한 학생들에게는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학교 앞 분식집이나 햄버거 가게는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떡볶이와 튀김을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고 라면 한 그릇으로 시험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단지 내 상가는 이미 있었지만 그곳을 아지트로 바꾼 것은 매일같이 드나들던 학생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였습니다.
떡볶이가 놓인 작은 탁자 위에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또래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엿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에게는 또 다른 외식문화가 생겨났습니다.
감자탕이나 순댓국처럼 푸짐하고 정겨운 메뉴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우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 시절의 외식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퇴근길의 작은 가게를 청춘과 낭만의 자리로 만든 건 서로 기대어 앉아 웃고 울던 우리였습니다.
친구들과의 만찬을 넘어서 연인과 둘만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중요해졌습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파스타집은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가 되었습니다.
조명과 음악, 그리고 플레이팅 된 음식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닌 로맨스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카페 거리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었지만 그곳을 특별한 기억으로 물들인 건 서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쌓아간 연인들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아이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이제 외식은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일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집에서 편하게 먹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추억이 그리워지면 처음 가봤던 갈빗집이나 청춘과 낭만의 감자탕 가게를 찾아갑니다.
익숙한 맛은 그대로지만 이제는 포장해서 집에 가져와 가족들과 함께 먹습니다.
그 음식을 가져와 다른 기억으로 만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 가족입니다.
신도시의 외식문화는 이렇게 변하고 있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언제나 우리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