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로운 프로젝트

by 리박 팔사


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제1장 내가 자란 도시


새로운 연구의 현장으로 인천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인천은 일제강점기의 수탈, 한국전쟁의 애환, 산업화 시대 노동자들의 땀이 공간에 겹겹이 쌓인 오래된 기록을 간직한 곳이다.

늘 소외되었던 다수의 삶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도시이다.

나는 이곳에서 과거의 지식을 해체하고 느린 사색을 시작하였다.

사실 인천은 내가 자란 도시이다.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온 곳이다.

그동안 나는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휩쓸려 내 고향의 공간들을 전문가의 시선으로만 분석했다.

이제 나는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나의 토대로 다시 돌아왔다.

나의 일상과 연구는 인천에서 다 시작된다.


제2장 좁고 평범한 길


나는 그동안 도시건축과 주거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거대한 도시계획, 기념비적인 건축물,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담론만이 훌륭한 연구로 평가받았다.

나의 관심은 보통의 사람들과 일상생활이었지만 관련 지식은 자본의 흐름과 건설의 체계가 우선시되었고 필요해 보였다.

나는 길을 좋아했다.

내가 집중하려는 골목은 과거 내가 추구했던 지식의 허점을 드러낸다.

골목은 전문가가 설계한 길이기보다는 주민들이 필요와 협력으로 만들어낸 삶의 창조물이다.

그 좁고 평범한 길에는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제 골목을 걸으며 그곳을 살펴보며 대중의 이야기를 읽고 사유한다.

공간의 소비자의 시선으로 왜 그들이 낡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을 애착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 어쩌면 효율이 아닌 다른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 다니던 길을 걸었다. 아침마다 학교 가던 그 길이 여전히 그래도였다. 이 길은 도시계획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길도 아니다.

그러나 이 길은 여전히 작동한다.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고 지탱하며 반복한다.


제3장 사용자 중심의 안내서


그동안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나의 주요 역할이었다.

나는 도시와 주거, 공간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정립하고 제시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그 기준들은 서구 중심이거나 관 중심의 논리에 치우쳐져 있었고 정작 공간의 사용자 측면과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명령이나 규율을 담고 있었을 뿐 ‘어떻게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나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다르다. 안내와 연결을 목표로 한다.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대중의 언어로 소개하며 그저 일상의 재미를 향상하는 데 있다.

나의 새로운 작업이 누군가의 일상을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발견하고 그 소소한 재미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재정의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가 될 것이다.


제4장 결론: 도시와 길, 가이드


내가 자란 도시, 좁고 평범한 길에서의 사색, 그리고 사용자 중심의 안내서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경력의 결과이다.

한때 나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판단했다.

그 판단이 당시에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제 나는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천천히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이 지적 기록은 대중과 연결하고 싶은 의도이자 즐거움을 되찾는 루트이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통하여 나는 내가 찾은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도시와 길, 가이드 관련 기록은 오래된 생각이자 늦은 행동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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