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도시계획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지도 위에 처음 그려진 신도시는 곧고 반듯했다.
도로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연결되고 단지는 정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고 기능은 조립하듯 분리되었다.
그곳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쌓이는 시간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질서로 조성된 생활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평온하고 조용한 동네였지만 성인이 되어 돌아보니 그것은 삶을 통제하고 예측하기 쉬운 구조물의 집합에 가까웠다.
우리가 살았던 곳은 마을이 아니라 설계된 생산품이었다.
신도시에서 아파트 단지는 삶의 공간이기 이전에 자본의 저장고였다.
브랜드, 학군, 역세권, 조망 같은 단어들은 사람을 위한 설명이 아니라 가격을 위한 언어였다.
동네는 점점 하나의 경제 차트로 변해갔고 관계보다 가격이 선명해졌다.
아파트는 집이기보다 그래프였고 일상은 생활이기보다 가치의 증명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우리는 자본이 설계한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며 자랐다.
도시 곳곳에 공공기관들은 처음에는 주민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도시 규범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 되었다.
민원실의 번호표 기계, 표준화된 운영 시간, 형식적인 안내 말투 등 정확할수록 무정했고 친절할수록 거리감이 생겼다.
우리는 공공성을 느끼기보다는 문제가 생기지 않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행정은 삶을 돕기보다는 일상을 규격화하는 방식을 더 잘 가르쳐주었다.
신도시의 상업 공간은 지역의 개성을 담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비의 형식을 만들었다.
대형마트의 조명, 프랜차이즈 메뉴판, 편의시설의 반복된 배치 등 취향은 다양해 보였지만 사실 비슷한 선택을 반복하는 하루였다.
맛집, 광고, 이미지 등 우리는 소비가 만들어준 기준을 따랐고 그 기준이 곧 자기 설명이 되었다.
내가 자란 동네는 삶의 도시보다는 소비의 도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신도시는 부족한 것이 없는 도시였다.
놀이터, 학원, 상가, 공원, 도서관, 대중교통 등 모든 것이 정확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정서는 얇아지고 관계는 멀어지고 사람의 관계는 희미해졌다.
우리는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를 궁금해할 이유는 많지 않았다.
예측가능한 질서 속에서, 표준화된 소비 속에서, 정확한 행정 속에서 자란 우리 세대.
그곳에서 유일하게 불분명했던 것은 도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