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삶의 조건: 살아남음과 안정의 스파이럴

논어(論語) - 학이(學而) - (13-16장)

by 방향

나는 지금 잡마켓의 매물이다. 짧은 메일 하나가 내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기다림의 시간은 지난하고, 불안은 늪이 되어 나를 쉽게 놓아주질 않는다. 지금 시대에 안정적인 직업을 기대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오퍼를 받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누가 나를 알아주고, 좋게 봐주는 것이다. 요즘 브런치 연재가 잦은 이유 중 하나는 마음 한켠이 문득 서늘해질 때, 나 자신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함이다. 나 자신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 마음가짐을 정식화하는 이 과정은 이 불안이 없었다면 좀 더 느긋했을지도 모른다. 논어는 유가사상의 가장 기본 텍스트로써 윤리, 도덕, 철학, 처세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입맛의 맞는 방식으로 제멋대로 읽힌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알려진 해설에 제멋대로 스파이스를 뿌려 신나게 오독오독하고 있다. 논어는 아직 한참 남아있다. 이제 학이편을 뒤로할 시간이다.


인용 출전 :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논어)

실제 읽은 판본 : 논어 (소준섭 역, 현대지성)



13) 유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신실함이 의로움에 가까우면 말은 지켜지고, 존경심이 예의에 가까우면 수치와 불명예를 피할 수 있으며, 친척을 잃지 않으면 존경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인(仁)과 예(禮)는 윤리와 도덕의 양 극단이다. 바른 마음과 바른 실천. 의(義)는 건전한 마음으로 처한 상황에 맞춰 적절한 형식으로 실천하는 인예의 중용이다. 13장에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을 뜻할까? 믿음이 의에 가깝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바른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한 메타 인지를 포함한 올바른 현실 인식에 기반한 발화(또는 약속)는 의가 나아갈 길(道)을 먼저 닦고, 마치 예정조화마냥 그 뜻이 이뤄진다고 유자는 말한다.


나는 지금껏 논어를 춘추전국시대 생존전략이라는 프레임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잠시 이 관점을 좀 더 밀고 나가보자. 메타 인지는 삶의 필수 소양이다. 정확한 현실인식이 있어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의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면 허언을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알아야, 타인을 대하는 법에 형식이 깃든다. 그렇다면 공손함은 무엇인가? 공손함에 예에 가깝다는 것은 질서에 잘 편입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윗사람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예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내가 아랫사람을 폭력적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며 반대로 강자의 이목을 끌어 화를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화는 언제나 치욕적이고 부조리할 것이다.


여기서 예는 불필요한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행동 양식의 원형이다.


14) 공자는 “군자는 먹을 때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살 때 안락함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일에 정진하고 말에 신중하며, 도를 아는 자에게 가르침을 구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는다. 이것이 참된 학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욕심부리는 군자를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음식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살 때 안락함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사치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모든 것은 적당히 필요한 만큼 구하고 사용한다. 해야 할 일을 하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고,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면 배워서 자신을 바로 잡는다. 학문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식의 추구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현실에 적응하는 태도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동양식 "눈 밖에 나지 않고" 사회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생존을 도모하는 방식이리라.


조금 더 나아가보자. 호학(好學)은 살아가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이자, 삶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다. 유학은 이상적인 세상을 그리는 윤리학이자, 동시에 삶을 이어가게 하는 지속가능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15) 자공이 물었다. "비굴하지 않으면서 가난하고, 오만하지 않으면서 부유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도 괜찮지만 , 가난하더라도 만족하고 부유하면서도 예의 바른 것이 더 낫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 ' 자르고 다듬고, 깎고 갈듯이 '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자공아, 이제 너와 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너는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구나."


이 프레임 속에서 아첨하지 않는 가난함과 교만하지 않은 부유함은 질서 속에서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양극단을 일컫는다. 공자가 더하는 절차탁마하는 삶의 묘리는 다음과 같다. 전자는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군자되기, 후자는 절제할 줄 아는 "군자되기"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모두가 더 나은 자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말하는 것처럼 개개인이 "군자"가 된다면 모든 일이 질서(이치)에 맞게 이뤄지고, 지속가능한 생존 및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16) 공자는 “나는 남들이 나를 모르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남들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지금은 자기PR의 시대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자신의 가치를 널리 알려서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이는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선 군자의 덕목이 나를 알리는 것, 내가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째서? 얼핏 이 구절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명인이 한순간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나락 가는 일이 빈번하다. 즉, 공자의 이 말은 시대에 대한 경종이다. 자기PR과 브랜딩에 가려진 크레바스를 드러낸다.


다시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보자. 심플하게 내가 윗사람이라면 남이사 아무래도 좋다. 반대로 내가 아랫사람이라면 윗사람에게 불필요한 주목으로 화를 입을 바에야 차라리 무명이 낫다. 그러나 앞에서 강조했듯이 올바른 현실인식의 한 요소로써 나는 내가 대하는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배려하고 이끌 수 없다. 반대로 윗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질서를 어지럽히고 화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남들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호학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배우지 않으면 남을 알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생존을 위한 인지 능력에 대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공손함의 필요조건이다.


지금까지 논어 학이편을 생존을 위한 질서 확립, 유지를 위한 교육 자료/생존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제목 값을 하지 못 한다. 게다가 유학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양한 해석이 있었고, 시대에 따른 변천이 있다.


나는 윤리와 도덕의 경전에서 생존 전략을 증류했다. 나는 처음에는 윤리와 도덕으로 춘추전국시대를 견뎌내기 위한 생존 전략의 포장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거부감 없이 가르치기 위한 설계가 어느 정도는 들어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생존 전략과 윤리/도덕 관계는 무엇인가. 나는 생존 환경의 안정화가 윤리적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군자를 추구하는 유가적 삶의 태도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질서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면서 최소한의 생존 안전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인과 예를 추구할 수 있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 남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그러한 마음의 여유가 윤리적 삶의 기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전략은 윤리적인 삶이 작동할 수 있는 현실의 토대를 쌓는데 기여한다. 살아야 윤리적일 수 있다. 윤리적이어야 혼란한 세상에 질서와 삶을 가져올 수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순환이 여기에도 있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생존 및 질서 확립 -> 질서 안정화 및 군자 추구 -> 개개인의 호학이 천하를 안정시키고 질서를 더욱 아름답게 함.


잡마켓의 매물로 나온 내겐 불안이 함께한다. 불안은 삶을 갉아먹지만, 한편으론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나는 또 한 번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학이편을 따라와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인용된 번역문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학이편을 읽으셨나요? 제 생각에 동조하시는 분도, 괘씸해하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건 여러분께서 논어의 구절을 화두로 삼으셨다는 의미이니 저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대에서건 불안은 삶의 한 요소였습니다. 어떠한 불안을 갖고 계시건간에, 여러분이 이를 극복해 살아가기 위한 호학은 어떤 것인가요?


위정편은 제 생각을 어떻게 바꿔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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