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테크니션으로서의 효자

논어(論語) - 학이(學而) - (9-12장)

by 방향

사실 이쯤 오면 여러분들께선 제가 어떤 식으로 논어를 읽고 있는지 대강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해석과 비슷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드셨다면 제 글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댓글로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공유해 주시면, 그것도 일종의 "논어" 읽기 북클럽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인용 출전 :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논어)

실제 읽은 판본 : 논어 (소준섭 역, 현대지성)


9) 증자는 “삶의 끝을 생각하고 조상을 기억함으로써 사람들의 덕성은 본래의 순수함을 되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인용된 글의 구글 번역을 읽어보면 마치 Memento Mori라는 라틴 격언이 생각난다. 조상을 기억하는 것을 통해 순수함을 되찾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읽은 판본에선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모든 정성을 다하라는 얘기가 나온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 이를 말이 되게 읽어내기 위해선 아무래도 전근대 가족이 갖는 기능적인 면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족의 기능 중 하나는 재산을 한 데 집중해서 후대로 상속(장자에 몰빵하기)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는 것이며, 충분한 위세를 갖추었을 경우에는 일가친척까지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돌아가신 부모를 정성을 다해 기리는 것이 백성/대중의 도덕을 순수하게 한다는 것인가? 효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나는 지금까지 이어져내려 오는 가족 시스템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유지/보수하겠다는 의지 및 성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근데 이걸 거꾸로 생각해 보자. 선인을 제대로 기리지 않을 경우 백성들의 덕성이 좋지 않아 질 것이라는 부분이다. 권력자가 "효"라는 질서를 수호하지 않는데,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은 어찌 그의 보호를 마음 편히 누릴 수 있겠는가.


증자의 이 말은 세도가에서 솔선해서 질서 안정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약자"들이 마음 편하게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10) 자친이 자공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어떤 나라에 가시면 항상 그 나라의 통치 체제에 대해 알아보십니다. 스승님께서 직접 정보를 얻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받는 것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스승님께서는 온유함과 친절함, 공경심, 검소함, 그리고 겸손함을 통해 정보를 얻으십니다. 스승님께서 정보를 얻으시는 방식과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얻으시는 방식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10장도 인용된 본문의 번역과 실제 읽은 판본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서 일단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다. 제시된 본문은 마치 공자가 정보를 얻는 방식과 다른 사람이 정보를 얻는 방식에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읽히지만, 내가 읽은 판본의 번역은 공자가 정보를 얻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공자를 띄우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을 짜내자고 생각한다면, 소위 군자의 덕목을 갖추고 있으면 알아서 정보가 모이는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강자"가 되면, 그 영향력/질서 아래에 편입되기 위해 알아서 "약자/백성"이 모인다는 의미라고 본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연상된다. 맥락이나, 언어적 형식에 전혀 공통점이 없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위임이라는 사회계약이리라. 특히 공자의 "인간적 매력"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쓴 것은, "인간적 매력"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 모든 질서와 시스템이 잘 굴러가게 만드는게 제일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11) 공자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 행실을 살피라. 만일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효자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인의 행실과 뜻을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 지침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효자"의 의미가 질서를 계승해서 유지, 보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정착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무질서함은 삶의 예측 가능성을 거세하는데, 평온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일종의 예측 가능성이란 점을 생각하면 "효자"와 "군자"의 개념이 필요불가결했으리라.


12) 유지는 이렇게 말했다. “예례를 행할 때 조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지켜져야 할 옛 왕들의 아름다운 방식입니다. 하지만 지켜서는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조화를 알고 추구한다 하더라도 예례로 규율하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군자의 덕목이 인(仁)이라면, 군자의 행보는 예(禮)로 규정된다. 이 시대에 이미 사람들이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라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람 사는 풍속도는 당시 형식이 규정하는 형태를 벗겨내고 나면 이제나 저제나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고전의 가치는 텍스트 자체보다도 그 텍스트가 견뎌온 시간과 쌓아 올린 주석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밑바닥부터 맨 땅에 헤딩하면서 쌓아 올리기보단, 활용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훨씬 풍부한 결과를 가져다줄 테니까.




그런데 왜, 효(孝), 인(仁), 애(愛) 같은 개념을 군자(君子)와 함께 이야기하는가. 킹간미를 위해서가 아닐까? 지금까지 논어를 대충 사회질서라던지 재산의 축적 및 효과적 운용에 대한 관점에서 읽어왔지만, 이를 읽는 독자들은 결국 사람이다. 가족에 대하는 자세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간적 경험이 아닌가. 결국 "최소한의 의식적 노력~밥상머리/집안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내재화하도록 논어의 구성을 편집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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