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아주 사소한 온기를 기억하는 일
이따금씩 어린이집에서 숙제가 떨어진다. 다음 주에 진행할 놀이 주제를 알려주고, 가정에서 미리 비슷한 경험을 한 뒤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진을 인화해 아이들의 놀이에 활용한다. 아이가 더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면, 웬만하면 챙기려 한다.
이번 미션은 ‘겨울간식’이었다. 나는 겨울 간식을 좋아한다. 붕어빵, 호떡, 군고구마, 꼬치어묵, 떡볶이. 이런 간식을 먹고 있으면,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어진다. 붕어빵을 유독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사 먹다 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느 날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붕어빵집 할 거야. 붕어빵 만들어서 봉지에 많이 담아서 엄마 줄 거야.”
우리 집 거실 창문으로 아래로 붕어빵집 에어간판이 보인다. 붕어빵 모양의 풍선이 길가에 나와 있으면, 그날은 문을 연 날이다. 주로 하원 후 아이와 함께 들른다. 이 집 붕어빵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떡집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겉에 발라진 버터인지 기름인지 모를 윤기가 바삭함과 더해져 풍미를 낸다. 꼬리까지 가득 찬 팥앙금을 한 입 베어 물면,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덕분에 꼬리는 늘 아이 몫이다. 양손에 붕어빵 꼬리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며 웃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앙금처럼 뜨거워진다.
어느 날은 붕어빵을 봉지 가득 사서, 아이와 꼬리와 몸통을 하나씩 나눠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 같은 라인의 이웃 아저씨를 만났다. 아이를 볼 때마다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주시던 분이라 늘 마음에 감사함을 품고 있었다. 그날은 문득, 손에 들린 붕어빵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뜨끈한 팥붕어빵 하나를 꺼내 건네자, 아이 간식을 뺏어 먹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우리가 많다며 결국 손에 쥐어 드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저씨에게도 이만한 손주가 있다고 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손주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운 좋게도 전국 맛집으로 소문난 떡볶이집이 아파트 상가에 있다. 거의 늘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베란다에서 내다보다 줄이 없는 시간에 내려간다. 진한 빨간 소스, 맵찔이들이 울고 갈 매콤함 속의 달큼한 감칠맛, 쫀득한 밀떡과 숨어 있는 어묵, 두툼하고 바삭한 튀김, 커다란 봉지 가득 담아주는 찰진 순대까지. 1인분에 4천 원이라는 가성비 덕분에 먹을 때마다 ‘맛집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좋아하는 꼬치어묵탕까지 더하면 식탁은 완성된다. 물론 후식은 붕어빵이다.
군고구마는 또 어떤가. 꿀밤고구마를 한 봉지 사와 깨끗이 씻고 양끝을 잘라낸 뒤, 에어프라이기에 195도로 30~40분 정도 앞뒤를 뒤집어 가며 굽는다. 이내 꿀이 흘러나오는 군고구마가 완성된다. 이 맛을 잊지 못해 고구마가 하나 남았을 즈음이면 또다시 새 봉지를 사 온다. 몇 번의 반복 속에 겨울은 지나간다.
월요일, 어린이집 반 문 앞에서 엄마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던 아이는 전날 저녁 종류별로 먹은 겨울 간식 모양의 장난감을 보고 자연스럽게 놀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는 경험을 기억한다. 단순히 맛의 기억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과 감정까지 품은 채로. 나는 아이가 따뜻한 감정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이를 조금 더 다정한 방향으로, 조금 더 적극적인 쪽으로 움직이게 해 주길 바란다.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스함의 문제
리처드 브로티건의 문장을 빌리자면, 내게 인생이란 ”코끝이 시큰해지는 겨울날 붕어빵 하나가 안겨주는 뜨끈한 달달함의 문제“다. 가판대 앞에서 얼어붙은 손을 비벼가며 붕어빵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마음, 뜨거운 붕어빵을 호호 불며 아이와, 이웃과 나누는 손길. 어쩌면 오래도록 꽁꽁 얼어 있던 마음을 단숨에 녹이는 건 어느 날 문득 옆사람이 건네준 붕어빵 하나 같은 온기 아닐까.
삶이란, 나를 하루 더 살게 하는 아주 사소한 온기를 끝내 놓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