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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Oct 31. 2023

좌로 반 보, 세상이 달라 보임!

-  아주 간단한 삶에 대한 자세 -

차곡차곡 일상


아침 7시 20분, 수요일은 늘 이 시간에 화장대에 앉는다. 아침부터 수업이 있기 때문. 우선 자리에 앉아 인공눈물로 눈을 살짝 적셔주고 내가 매긴 순서대로 화장품을 하나씩 끌어온다. 한 꺼풀씩 얼굴에 덧발라지는 촉감이 부드럽다. 거기에 등 뒤로 비춰주는  아침햇살이 더해져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제 고난도 눈썹 그리는 타임이다! 

몇 년 전 눈썹 문신 하러 가자는 친구들의 끈덕진 권유를 다 뿌리친 나다. 친구들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음~ 오래전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문신> 때문이다. 문신을 새길 때 손님이 아파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쾌락을 느끼는 은밀한 취미를 가진 그 문신사가 떠올라서(이건 어디까지나 어릴 적 읽은 책에서 느낀 개인적인 감정이었습니다). 너무 비약이 심했나?! 이젠 따라갈 용기는 생겼는데 같이 갈 친구가 없다. 그때 모른 척하고 갈 걸 그랬나 보다. 아무튼 매일 아침 이렇게 수작업을 한다. 


요 대목에서 햇살은 마냥 따뜻하고 좋지만은 않다. 우호적인 햇빛이 너무 강해 작은 거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리니... 몇십 년의 숙련된 기술(?)과 감으로 쓱쓱 그려 나간다지만 눈 떠 보면 어느 한쪽은 꼭 올라가 있다. 그것도 급할 때일수록!



이날도 슬슬 승질이 나기 시작했다. 

아 가만! 의자를 왼쪽으로 반 보 옮겨볼까? 옮겼다! 

와우~ 신세계다. 따스한 햇살은 그대로인데 전혀 눈부시지 않다. 이 기세를 몰아 잠시 화가가 되어 본다. 펜슬이 삭삭 소리를 내며(약간 과장) 내 눈썹을 찾아줬다. 눈썹에 만족 그리고 반 보 이동할 생각과 반 보 이동한 행동에 마음 뿌듯하다.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별 것 아닌 의자 조금 옮긴 걸로 웬 호들갑이냐 싶지만~ 


삶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할 땐 일단 승질 한번 내거나 확 울어버리고 위치(자리)를 조금만 이. 동. 해보면 의외로 간단한 해결법이 찾아질 때가 있다는 것. 아주 사소한 시도가 나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는 것. 


둥그런 의자 하나 왼쪽으로 반 보 옮기며 삶에 대한 자세를 배우는 가을날 오후다.


* 오늘의 단어는 의자いす(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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