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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Jan 31. 2024

공연 전 물을 퍼냈다 그날...

- 추억이란 -

지지난달우리 동네 사거리에서 춤축제가 있었다.

사람들의 익숙한 발걸음과 설레는 표정을 보니 해마다 열리는 행사인가 보다. 이사 와서 처음인 나 역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동네에서 열린 춤축제를 보며 기브고 설렌 마음에 찍은 사진


한 가지 변수라면 하루종일 비가 멈추지 않았다는 거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하지만 절대 비에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인지 우천 시에도 진행! 이란 전광판 문구가 더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누구의 기가 더 센지 경쟁하듯 비를 뚫고 나오는 가수들의 고음과 연주에 이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뒤를 이어 엠비크루라는 비보이그룹이 등장했다. 흰 티에 헐렁한 바지, 툭 불거진 팔뚝의 힘줄에서 멋진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런~ 박수와 함께 등장은 멋지게 했는데 바닥이 미끄러운 탓에 급 무대가 변경되었다. 혹시라도 다치면 안 되니 말이다. 임시무대는 본 스테이지의 바로 아래 넓지 않은 아스팔트 바닥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워 보였으나 이내 안정된 고공행진을 선보였다.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위로 돌고~비를 맞아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표정인데 어쩜 그리 서로의 사인에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이럴 땐 과한 리엑션이 최고다! "와우~꺅~멋져요"라는 감탄사와 박수로 박자를 맞췄다. 그중 한 멤버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격한 반응에 힘이 난 듯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다.




시간을 거슬러~

대학교 2학년 9월 초 이른 아침, 장소는 학교 소강당.

일본어 공연 첫날이다. 우리 학교 일어교육과에선 2년마다 일본어로 원어연극을 하는 게 상당히 큰 행사였다. 특히 그날 공연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큰 의미였고.


5시 공연시작인데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태풍이었던 것 같다. 그 덕에 딸 역할을 맡은 나를 포함해 우리의 마지막 리허설은 물 퍼내기였다. 억수같이 내린 비에 강당에 물이 차 올랐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친구,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열. 심. 히. 물을 퍼냈다. 비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갑자기 이 대목에서 그때를 아십니까 가 생각난다.  시작 전 많은 에너지를 썼으나 긴장감에 버텨냈던 기억이 난다. 공연은 나름 성공이었다. 원어연극이기에 대사 잊어버리지 않는 게 일차 목표였으니 다들 성과는 있었다고 자축하기도 했었지. 연극도 연극이지만 앞의 물 퍼내기 작업에 대한 노고 치하였을까? 살면서 그런 박수를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어대본 암기는 일도 아니었다. 아침부터 급하게 물 퍼낸 거에 비하면 말이다.


춤축제가 열리는 빗속에서 그때의 추억이 오버랩된 건 왜일까?


늘 깔린 멍석 위에서 멋들어지게 공연만 하면 좋겠지만, 때론 내가 멍석을 깔고 다. 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이래서 우리의 삶은 롱런하는 한 편의 연극인가 보다.

감독도 나 주인공도 나 인!


아무튼 그날 나는 수고를 안주 삼아 내 주량을 재차 확인했다. 이젠 가슴 한켠의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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