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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Apr 13. 2024

귀하가 인간이란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  감히 나를! -

차곡차곡 일상


귀하가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작업을 계속하십시오.




난 휴대폰으로는 글을 쓰거나 문서열기를 잘하지 않는다. 글씨가 작아 잘 안 보이기도 하고 눈이 시리거나 눈물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선 더 그렇다. 그래서 글을 쓸 땐 집에서 작업을 하거나 나갈 땐 어지간하면 노트북을 들고 간다.


뜬금없이 3월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진로시네마 수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일에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는 요즘이다.(이 내용은 다음 글에 쓰겠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과 사뭇 달라 선배 선생님들과 수시로 PPT와 문서를 교환한다. 어제도 그랬다.


밖에서 일 보는 동안 휴대폰이 계속 부르르 떤다. (노트북을 안 가지고 나와 할 수 없이) 참고 참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문서열기를 눌렀더니만 회원가입이나 로그인을 하란다. 아이디를 찍고 비번을 누르고 매번 하는 일이지만 참 귀찮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뭔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알림을 보곤 '에잇' 하며 거기서 멈췄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야말로'를 외치며 마음을 열고 차분히 하나씩 꼭꼭 누른다. 이게 뭐라고 참나~


여러 과정을 통과해 간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인 것 같다.

이상하다. 지난번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림상자 두 개가 나오더니만 나더러 왼쪽의 화살표 방향대로 오른쪽 그림의 주전자 주둥이 위치를 맞추란다. 주전자 그림 바로 아래엔 6단계로 나름 정교하게 조금씩 방향을 맞추도록 되어 있다. 화살표는 7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난 손가락을 조금씩 돌려가며 주전자 주둥이를 비슷한 방향으로 바꿔 놓았다. 맞은 듯. 지하철 구석자리에 앉아 혼자 신났다.


'다음 단계'라는 글자가 선명해진 걸 보니 주전자 꼭지 방향 조준을 듯 싶다. 옛날 동전만 생기면 오락실로 달려가 테트리스 하며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느꼈던 쾌감을 잠시나마 맛본다. 별 것 아닌 일에 괜스레 뿌듯하다.


근데 다음 화면에서 난 순간 살짝 기분이 묘해졌다.

'귀하가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작업을 계속하십시오' 란다.


감히 기계가 나를 인간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다니. 무슨 기준과 조건으로 나를 판단한 건데? 게다가 허락해 줄 테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네가 뭔데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인간인 나를 증명해!'

지하철 안에서 폰에다 대고 승질내며 혼잣말한다. 앞에 서 있던 젊은 친구가 흘끗 나를 쳐다본다.


계정 만들기에 성공해 폰으로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지구상에 가장 귀한 존재인 사람에게 기계가 증명과 (완곡하지만) 명령 같은 문구를 표현하는 건 그리 달갑진 않다.

어이없어 웃기기도 하고 살짝 반감이 들기도 한 이 표현에 50대 아줌마(=나) 한 마디 한다.


"내(우리)가 있으니 너희(기계나 기기)가 쓰이는 거야!"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되는 AI 인공지능 뉴스를 접하다 인간과 로봇의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내가 좀 과민반응한 건가. 그날따라 말이다.


* 오늘의 단어는 인간 にんげん(니ㅇ게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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