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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Jun 20. 2024

키우기 쉽지 않은 생명체

- 그건 너 -

차곡차곡 추억


뜬금없이 옷장을 정리하다 잘 간직해 놓은 보물을 꺼내 들었다.

바로 배냇저고리다.

옆에 있는 반팔티셔츠도 같이 꺼냈다. 신기하다. 이 옷들의 공통점은?!

옷의 주인이 같다는 거다.  

다른 점이라면 세월의 흐름이랄까?  

(사진상으로는) 불과 몇 센티 안 되는 간격이지만, 숨어 있는 차이는 22년이다.

결혼하고 8년 만에 시험관 시술을 통해 한 아이를 낳았다.  난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자식이 없어도 된다는 주의였는데 나를 제외한 주위의 의견은 달랐다.  요즘엔 가족의 의미가 다양해져 여러 형태의 가정이 있으나 그때만 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기는 아니었기에.

  

아이를 낳아 보름쯤 후 집으로 데려온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아기가 사각형 방석 안에서 마구 꼼지락거렸다.  어른들 말씀이 맞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마냥 신기하고 그냥 예뻤다.  하지만 예쁜 건 예쁜 거고 육아는 역시 현. 실.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고 싸대고 보채고 도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모르는 초보엄마는 같이 울다 지쳐 친정과 시댁에 번갈아가며 전화를 돌리곤 했었다.  게다가 그땐 학원 새벽수업을 들어가고 있던 터라 몸과 마음이 정말 바쁘고 힘들었었다.  


아이 때문에 힘든데 아이 덕분에 행복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참 신기하기만 했다.


그 꼬물이가 커서 어느새 스무 살을 넘어섰다.  어린 시절의 응석과 현재의 어른스러움이 묘하게 교차되니 이 또한 웃기고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자식이란 부모에게 미지의 신비함을 주는 존재인가 보다. 모르니까 키우지 그 과정을 다 알면 정말 키우기 쉽지 않은 생명체인 것 같다 하하~  나도 우리 엄마아부지한테 이런 존재이겠지.


며칠 전 새벽까지 드라마를 보길래 다음날 아침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다음날 피곤하니 적당히 보면 좋겠다"라고 한 마디 하니  "내가 알아서 해" 라며 자리를 뜨더라.  엄마의 잔소리가 원천봉쇄 당하는 순간이었다.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가끔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젠 독립된 개체로 봐야 한다는 나름 비장한(?) 각오로 자잘한 감정을 정리한다. 


20년 전 이 아이를 통해 세상에 한 발 더 들어갔고, 여러 가지 힘듦을 느꼈으며 그런 만큼 큰 기쁨을 맛봤다. 사실 지금도 맛보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게 바로 행복일 거다.  현실세계에서의 신비로운 이 맛은 때론 강하게 때론 순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 오늘의 단어는  

딸 むすめ(무스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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