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가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작업을 계속하십시오.
나는 인간이라 증명하는 기기가 어이없어 찍은 사진 난 휴대폰으로는 글을 쓰거나 문서열기를 잘하지 않는다. 글씨가 작아 잘 안 보이기도 하고 눈이 시리거나 눈물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선 더 그렇다. 그래서 글을 쓸 땐 집에서 작업을 하거나 나갈 땐 어지간하면 노트북을 들고 간다.
뜬금없이 3월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진로시네마 수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일에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과 사뭇 달라 선배 선생님들과 수시로 PPT와 문서를 교환한다. 어제도 그랬다.
밖에서 일 보는 동안 휴대폰이 계속 부르르 떤다. (노트북을 안 가지고 나와 할 수 없이) 참고 참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문서열기를 눌렀더니만 회원가입이나 로그인을 하란다. 아이디를 찍고 비번을 누르고 매번 하는 일이지만 참 귀찮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뭔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알림을 보곤 '에잇' 하며 거기서 멈췄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야말로'를 외치며 마음을 열고 차분히 하나씩 꼭꼭 누른다. 이게 뭐라고 참나.
여러 과정을 통과해 간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인 것 같다.
이상하다. 지난번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림상자 두 개가 나오더니만 나더러 왼쪽의 화살표 방향대로 오른쪽 그림의 주전자 주둥이 위치를 맞추란다. 주전자 그림 바로 아래엔 6단계로 나름 정교하게 조금씩 방향을 맞추도록 되어 있다. 화살표는 7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난 손가락을 조금씩 돌려가며 주전자 주둥이를 비슷한 방향으로 바꿔 놓았다. 제대로 맞은 것 같다. 지하철 구석자리에 앉아 혼자 신났다.
'다음 단계'라는 글자가 선명해진 걸 보니 주전자 꼭지 방향 조준을 잘 한 듯 싶다. 옛날 동전만 생기면 오락실로 달려가 테트리스 하며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느꼈던 쾌감을 잠시나마 맛본다. 별 것 아닌 일에 괜스레 뿌듯하다.
근데 다음 화면에서 난 순간 살짝 기분이 묘해졌다.
'귀하가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작업을 계속하십시오' 란다.
감히 기계가 나를 인간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다니. 무슨 기준과 조건으로 나를 판단한 건데? 게다가 허락해 줄 테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네가 뭔데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인간인 나를 증명해!'
지하철 안에서 폰에다 대고 승질내며 혼잣말한다. 앞에 서 있던 젊은 친구가 흘끗 나를 쳐다본다.
계정 만들기에 성공해 폰으로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지구상에 가장 귀한 존재인 사람에게 기계가 증명과 (완곡하지만) 명령 같은 문구를 표현하는 건 그리 달갑진 않다.
어이없어 웃기기도 하고 살짝 반감이 들기도 한 이 표현에 50대 아줌마(=나) 한 마디 한다.
"내(우리)가 있으니 너희(기계나 기기)가 쓰이는 거야!"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되는 AI 인공지능 뉴스를 접하다 인간과 로봇의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내가 좀 과민반응한 건가. 그날따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