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54 고속도로 표지판에 'Arles' (아를)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마음 한 구석,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고흐가 사랑한 마을 '아를 (Arles)'에 대해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아를은 고흐의 마을이기 이전에 2000여 년 전 로마인들이 먼저 사랑한 마을이고 중세 유럽 문명이 혼재된 도시이다. 매년 여름이면 화려한 꽃이 피고 경기장 아레나에서는 공연이 열린다. 그러나 중세의 광장을 벗어나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고흐의 흔적이 보이고 느껴진다. 죽어서야 이름을 얻게 된 이름 없는 화가.
아를의 아침이 밝았고 숙소보다 숙소 아주머니가 불편해서 일찍 짐을 챙겨 나왔다. 짐을 끌고 아침의 론강을 따라 기차역 주차장으로 가니 그새 정이 들었는지 낯선 곳에서 밤을 지새운 자동차가 반갑다 인사를 한다. 아를의 기차역 주차장은 주차 요금도 없고 (자동차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지만) 구시가지와 가까워 좋았다. 트렁크에 짐을 두고 다시 론강을 따라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토요일은 아를의 아침 시장 (남프랑스에서 가장 큰 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아를 관광안내소를 찾아 골목길을 나서는 순간 마법처럼 커다란 장터가 보였다. 형형색색 자판이 가득하다. 배고픈 여행자의 망막이 열렸다. 오늘 최고의 코스 요리가 시작되었다. 일단 가볍게 과일로 시작했다. 밭에서 바로 가져온 듯, 싱싱한 자두, 납작 복숭아, 멜론 딸기 등 과일의 향기에 취했다. 딸은 파리 여행 내내 사랑했던 납작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다음은 치즈, 상인들은 각종 치즈를 맛보라고 건네준다. 이름도 모를 치즈의 향연. 치즈 부스 옆에는 치즈 친구 올리브. 이제 메인 요리로 들어간다. 건장한 청년이 거대한 철판에 새우, 홍합, 닭고기가 들어간 빠예야를 만들고 있다. 거대한 주걱으로 철판을 휘젓는 청년이 우리를 보고 10분만 기다리라고 웃는다. 기다림은 가장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얼마만의 밥인지. 쌀인지. 역시 밥은 옳다고 내 몸이 아우성이다. 물론 맛은 스페인 시골에서 먹은 짭짤한 빠에야에는 부족했지만. 청년에게 조금 싱겁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맛있지 않냐고 묻는 청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크게 끄떡여주었다. 딸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전기구이 통닭 다리를 먹고, 나는 올리브 하나만 들어있으나 인생 최고였던 피자를 먹고 먹고 또 먹고.알뜰한 딸의 지갑이 마구 열렸다.
물론 디저트는 우리가 사랑하는 빵이다. 파이, 바게트, 초코 크로와상. 인심 좋게 생긴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우리나라 시골 옥수수 빵처럼 생긴 네모난 빵을 크게 한 조각 내밀었다. 그리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고 나는 동전지갑을 열었다. 아저씨는 그냥 가져가라고 먹어보라며 웃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오렌지 향기가 났다. 설탕과 함께 오렌지가 살캉살캉 씹히는 오렌지 빵이다. 레몬이 들어간 빵은 먹어보았지만 오렌지 빵은 처음이다. 그저 단순한 버터와 설탕이 들어간 빵이었는데 오렌지가 신의 한 수였다. 딸과 눈이 마주치고 우리는 빵을 샀다. 빵을 흡입하고 시장을 돌다가 다시 그 자판대로 돌아와 오렌지 빵을 사고. 세 번째 갔을 때는 아저씨가 덤으로 귀퉁이를 크게 잘라주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향기와 살캉한 오렌지맛을 잘 기억하고 있다.
즉석에서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고 회전목마 앞에서 누텔라 초콜릿 빵을 들고 앉아 시장을 들여다보았다. 먹느라 사진도 남기지 못하고 어느새 시장이 파장이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시장이 한산해지기 시작한다. 회전목마를 타던 아이들이 떠난다. 이제 우리도 떠날 시간이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다시 오면, 오렌지 빵을 먹을 수 있을까.
배고픈 여행자가 배부른 여행자가 되자 발에 힘이 들어갔다. 아를 시장에서 고흐가 입원해 있었던 정신병원 (L'espace Van Gogh) 까지는 걸어서 5분. 좁은 골목을 돌아 이상한 문을 통과하자 고흐를 상징하는 노란색 벽이 눈에 들어왔다. 꽃이 가득한 정원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L'espace Van Gogh)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레나 경기장을 지나 아를의 골목을 걸었다. 광장을 지나고 기이한 느낌의 벽화가 그려진 오래된 건물, 작은 갤러리, 파란 대문의 집을 지나 다시 고흐의 노란 카페로 갔다. 한낮의 노란 카페는 분주했다.
아를을 떠나 고흐드 마을의 소박한 중세시대 수도원으로 길을 나섰다. 론강을 지나고 한참을 달려 D15 고흐드 도로(Route de Gordes)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Route de Cavaillon 길을 달리니 오른쪽으로 중세도시 고흐드가 보인다. 차들이 절벽에 아슬아슬 붙어있고 사람들이 내려서 고흐드의 모습을 담느라 사진을 찍는다. 아쉽지만 지나간다. 점점 더 산을 오르고 내리고. 지나가는 차들도 없이 Route de Senanque (세낭크 도로)로 들어섰다. 멀리 왼편에 수도원이 보이며 내리막이 끝나고 딸과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길에 압도되었다. 길에도 영혼이 있을까. 세낭크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구도자의 길이다.
고흐드 (Gordes)
세낭크수도원 (Senanque Abbey)
세낭크 수도원을 찾은 이유는 사실 수도원 앞의 라벤더 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딸에게 세낭크 수도원에 가면 수도원 앞 라벤더 꽃밭을 보여주겠다고 단언했었다. 이번 여행은 그림을 보기 위한 여행이었고 성당이나 수도원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성당이나 수도원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했다. 세낭크 수도원은 나의 얕은 경험과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었다. 소박한 건물이 아름다웠다.
'자신의 손으로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은 수도사가 아니다'라는 시토 수도회 수도사들이 침묵과 기도로 살아가는 수도원은 내부 역시 소박했다. 장식 없는 나무 십자가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나의 헛된 말과 행동과 자만이 부끄러웠다. 이곳에서는 침묵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힘들고 지친 날이 온다면, 너무 외롭고 슬픈 날이 온다면 나는 지금 눈앞의 나무 십자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수도원 밖으로 나와 라벤더 밭을 둘러보았다. 작은 라벤더 나무 끝에 보라색 꽃망울이 수줍게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