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 가지 일정이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 퐁피두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Philhamonie de Paris'에서 '크리스티앙 짐머만'의 피아노 공연이 예약되어있다.
나의 딸 (나의 여행 동반자)은 나와 공통점이 많다. 그림과 음악을 좋아하고 빵을 좋아한다. 루브르에서 12시간을 버틸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이다. 딸과 나는 미술관에 들어서면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사라진다. 밥을 먹거나 쉴 때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각자의 길로 간다. 오늘 크리스티앙 짐머만 공연은 딸이 지난 6개월간 영혼을 털리며 영화제 직원으로 고생한 생활의 보답이라고 매일 밤마다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어렵게 구한 티켓이다. 딸은 이번 여행에서 숙소와 짐머만 공연과 그리고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여행 마지막쯤 감동의 선물을 받았다.) 자식이 친구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그림을 보고, 짐머만을 듣는다. 쇼팽을 가장 잘 해석한다는 짐머만을 만난다.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딸이 airbnb에서 예약한 원룸이다. 숙소는 딸이 경비를 지불해서 무조건 착한 가격을 골랐다. 24 Rue Poissonniere에서 오랑주리까지 N16과 N11을 갈아타고 콩고드 광장에서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이른 시간이고 광장을 내달리는 차들 사이로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외롭게 서 있다.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해서 미술관이 열리고 바로 들어갔다. 모네의 수련! 타원형의 벽을 따라 이어지는 수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와 함께 세잔, 마티스 모딜리아니, 피카소, 르느와르, 루소, 시슬리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시간이 걸렸다. 너무나도 황홀한 마음과 허기진 배를 안고 점심을 먹으러
'Cuppa - Salon de Cafe'로 갔다. 점심 메뉴로 Tartine Rose d'Avocat et duo de Houmous maison Bio와 쥬키니 파스타 샐러드를 먹었다.
(Tartine Rose d'Avocat et duo de Houmous maison Bio)
빵 위에 sweet potato 소스와 그 위에 아보카도가 올려져 있다. 아보카도 위에는 견과류를 올린 새싹채소가 있다. 다른 빵 위에는 비트 소스와 아보카도가 올려있다. 접시를 받았을 때 화려한 색감에 놀라고 한 입 맛을 보면 고소한 빵과 소스, 아보카도가 절묘하게 새싹채소와 하모니를 이룬다. 점수를 줄 수 있다면 만점을 주고 싶었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가게는 작지만 아늑하고 부부인 듯 친구인 듯 보이는 두 사장님은 친절히 메뉴를 설명해주었다. 아보카도 토스트나 주키니로 가늘게 만든 파스타 역시 재료의 맛을 살린 최고의 맛이었다.
(쥬키니 파스타 샐러드)
주키니로 만든 파스타는 처음 먹어보았다. 나는 호박 마니아다. 물컹하다고 호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호박이 주는 달콤함은 채소의 경계를 넘어선 맛이다. 우리나라 호박과 주키니의 식감은 다르다. 주키니는 조금 더 강한 성질이 있어서 파스타로 재료로 쓰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키니 파스타를 처음 영접했다. 방울토마토와 새싹 야채와의 조합도 뛰어났고 주키니 호박의 쫄깃하며 달콤한 맛과 잘 어울렸다.
디저트로 곁들인 바나나 브레드와 카푸치노까지 최고였다. 이 식당은 프랑스에서 맛 본 최고의 비건 식당이다.
점심을 먹고 다시 힘을 내고 퐁피두센터로 가는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리의 날씨는 도시를 닮아 변덕 그 자체이다. M12와 M1을 갈아타고 밖으로 나오니 빗줄기가 거세게 몰아쳤다. 멀리 보이는 퐁피두를 향해 달려 일단 들어갔는데 입구를 잘못 찾아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헤매고 헤매고 마침내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미로의 파란 방에서 다시 충전을 하고 일어섰을 때 로스코의 그림이 보였다. 너무 반갑고 가슴이 뛰었다. 언제일까 꼭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의 예배당에 가고싶다. 외부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5층으로 올라가면 난간에서 보는 파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마침, 그리 웅장하게 내리던 비가 멈추고 멋진 파리 모습이 다가왔다.
로스코 'Untitled (Black, Red over Black on Red)'
(퐁피두센터에서 보는 파리)
퐁피두에서 M4와 M5를 갈아타고 Porte de Pantin 역에서 내려 10분을 걷고 Paris Philhamonic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그러나 하얀 수염과 백발의 짐머만이 쇼팽 마주르카 24번 첫 음을 시작하자 쇼팽이 살아 돌아와 연주하는 듯했다. 짐머만 콘서트가 끝나고 나오니 다시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파리의 늦은 밤, 소박하고 고즈넉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