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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동 누나 Aug 10. 2022

그림 찾기를 해볼까! 여름 도쿄(4)

작은 기차역의 기억

2017년 8월 25일


창밖의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창문을 열어본다. 새벽 공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작은 호텔은 조용하다. 좁은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와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살며시 열고 밖으로 나간다. 딸과 아침 산책을 한다. 작은 마을이다. 골목을 돌아 기찻길로 걷는다.

(고우라 마을의 새벽 풍경 )


작은 기차역을 보고 있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주인공은 '쓰쿠루'라는 이름처럼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건축을 공부하고 기차역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기차역을 좋아했다는 주인공은 친구들과는 다르게 이름에 색이 없다. 특징도 개성도 없는 그저 무난한 성격의 조용한 주인공은 어느 날 이유 없이 친구들에게 버림받는다. 긴 시간, 주인공은 죽도록 힘들었던 상처를 회복하며 자신의 색을 찾는다.


일본의 기차역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다. 시골의 작은 역일수록 특별한 장식이 있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기차에서 내리면 그곳에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자키 쓰쿠루가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듯 그저 특별하지 않는 모습이 주는 안도감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나의 기억 속,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차역은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던 '아라시야마'의 기차역이다. 그 봄에 어울리는 소박하고 사랑스러웠다. 다자키 쓰쿠루처럼 나 역시 그저 무난하고 특별하지 않는 나의 모습, 나의 일상을 닮은 작은 기차역을 좋아한다.

(2011년 봄 교토 아라시야마의 기차역)


조용한 골목을 돌아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아주머니가 아침인사를 한다. 다다미 방의 이불을 정리하고 짐을 챙기고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감사히 먹고 짐을 가지고 나왔다. 기차역으로 걸어가 빨강 기차를 타고 '조코쿠노모리'역에서 내린다. 기차역에 캐리어를 맡기고 '하코네 조각미술관 THE HAKONE OPEN-AIR MUSEUM'으로 걸어간다. 멀리 미술관 입구가 보인다. 1969년에 개관된 일본 최초의 야외 미술관, 녹색의 정원에 근. 현대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피카소 관을 비롯한 5개의 실내 전시장도 있다. 미술관 입구에서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초록의 언덕이 펼쳐진다. 그 초록의 언덕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나타난다.


날씨가 너무 더워 뮤지엄 카페에 들어가 딸과 메이플 시럽 진저에이드와 블랙베리 커런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카페 이층으로 올라가니 실내 전시가 있다. Yves klein의 'Blue Venus', 윌렘 드 쿠닝, 칼더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Yves klein의 'Blue Venus
칼더의 작품

예쁜 뮤지엄 카페에서 나와 다시 언덕을 걷는다. 아이들을 위한 거대한 작품이 있다. 피카소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전시관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피카소 전시관)

거대한 조각의 숲을 탐험하고 나와 다시 조코쿠노모리 기차역에서 유모토 역으로 간다. 하코네 유모토 역에서 2시 19분 로만스키 기차를 타고 신주쿠로 향한다. 기차가 시골길을 지나 다시 도시로 들어선다. 3시 58분 도쿄의 신주쿠역에 도착하니 하코네 조각 미술관은 아주 오래전 멀리 다른 세상으로 느껴진다. 캐리어를 들고 복잡한 신주쿠역,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계란 샌드위치를 먹었다. 다시 나리타 공항으로, 공항에서 츠케멘과 교자를 먹고 어둠이 내리는 도쿄의 하늘을 비행기 창으로 바라보며 늦은 시간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여행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노곤함이 몰려온다. 빨간 기차가 달리는 초록의 길 사이에 철 지난 수국이 인사를 한다. 보라색 파란색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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