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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Oct 12. 2023

오늘 내 마음을 스친, 비싼 똥


단백질 쉐이크를 사봤다.

계란을 삶지 못한 아침, 단백질 음료를 타 마시면 간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리뷰가 정말 좋았던 제품이었고, 오늘 아침 기대되는 마음으로 개봉했다.

섭취방법에 따라  우유 250ml와 동봉된 숟가락으로 2스푼을 넣어 마셨다.

난생처음 사보고 마셔보는 단백질 보조제인데,

리뷰에 쓰여 있는 것만큼 다이나믹하게 맛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단백질 쉐이크는 정말 맛이 없고 비린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도 순조롭게 등교를 했고,

집안도 차분이 정리했다.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 운동을 하러 나선다.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뒷문 노작공원과 연결된 아파트 쪽문.

쪽문을 나와 사거리 횡단보도로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두근두근 설렌다.

이 길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고

이 길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러 가는 길이다.




요즘처럼 청명한 가을 하늘,

운동복과 책 한 권, 필기할 노트와 펜이 든 가방을 메고

귀에 꽂은 버즈 사이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이 순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좋아하는 곡은 1곡 반복 재생이다.



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약속과 일정이 빠듯하게 많은 날이 이어지면

어김없이 몸과 마음이 지친다.



나만의 시간이 많은 요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감정은 말랑말랑해진다.

아 - 상쾌해!

좋다!


아니,


좋. 았. 다.




pt시간이 될 때까지 폼롤러로 몸을 한껏 풀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데,

그럼 30분 인터벌이나 해볼까?

러닝머신을 뛰는데

엇. 신호가 온다.  

급기야 가스가 새어 나오려고 한다.  

시작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

가스가 나오지 않도록 괄약근에 힘을 줘본다.


하지만,  

마흔 넘은 아줌마의 괄약근은 그리 탄력이 있지 않다.

참을 수 없었다.

결국 1세트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정지 버튼을 눌렀다.



화장실로 갔다.




휴...


큰일도 치렀겠다. 이제 괜찮겠지?


시작 버튼을 누르고 마무리하지 못한 30분 인터벌을

다시 하려고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요 며칠 러닝머신 30분 인터벌을 속도 11까지 올려 완성했다.

끝까지 해 냈을 때의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지금껏 뛰다가 중간에 멈춘 적은 없는데..

다시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2세트를 향해 달려가는데...

다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하아....


창문 밖 반대편 건물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똥', '화장실', '배 아파', '방귀' 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속으로 외쳤지만.


'똥 떠올리지 마!'

생각을 안 하려고 할수록,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란걸.

참을 수 없는 큰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4세트 도중에 빨간색 '정지' 버튼을 눌렀다.




변기 물을 내리며

화장실 거울 속 핼쑥해진 얼굴을 봤다.

시원한데, 왜 기분이 별로냐...!

핸드폰을 들어 '운동 효과 화장실'을 검색해 보지만 속 시원한 글은 없었다.


'아,  단백질 쉐이크...!' 번뜩 떠올랐다. 나 아침에 단백질 쉐이크 마셨지!

브런치에 검색해 보니, 은거울 작가님께서 속 시원한 답변을 주셨다.


https://brunch.co.kr/@xorodtm/40


평소 먹지 않은 단백질 쉐이크를 잔뜩 마신 것과 부족했던 탄수화물이 원인이었다.


pt가 끝나고 다시 한번 인터벌에 도전했지만,

3번째 다시 화장실로 직행했고.

오늘 난 결국 30분 인터벌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센터에서 나왔다.

뭔가 하다만 이 찝찝한 기분....



하아,

비싼 똥 누고 기분도 꿀꿀한데

뿌리염색이나 하러 미용실로 가야겠다.




동네 미용실에서

뿌리염색을 하고 원장님이 웨이브를 예쁘게 말아주셨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굿굿!


저녁 먹고

아파트 공용헬스장에 내려가서

다시 인터벌 도전이다!


이젠, 괜찮겠지!


설마, 아직도 남았냐?!







*출처:사진은 픽사베이,  은거울님의 브런치


은거울님의 글을 가져왔는데, 댓글이 허용이 되지 않아 여기에 올립니다.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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