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기만 해도 그림처럼 작품이 되는 식물을 하나 들이고 싶었다. 매 순간이 변하는 그림이라서 순간들마다 마음속에 저장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그림이면 좋을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성장 할 수 있는 그림이면 좋겠지. 어릴 때 모습부터 성체가 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흐름을 볼 수 있다면 참 흐뭇할 거야.
아직은 작고 여리여리한 프라이덱
그렇게 해서 프라이덱은 나의 침대 한쪽을 채우게 되었다. 집안일을 하며 오고 갈 때 시선이 가서 자꾸만 쳐다보게 되고 보았지만 한번 더 보고 싶은 그런 식물이 되었다.
묘에서 막 벗어난듯한 알로카시아 프라이덱은 햇살로 채운 여백에서 싱그러운 초록으로 빛났다. 햇살이 각도를 달리하면서 지나갈 때 식물의 그림자도 달라지고 햇살을 받는 식물의 면들도 달라졌다. 그런 매 순간이 달라지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듯 했다.
식물이란 살아있는 유기체라 그런지 환경의 영향도 많이 받긴 하지만 환경보다는 관심을 가져주고 예뻐해 주면 그만큼 잘 자란다. 매일을 매만져주고 쓰다듬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식물이 프라이덱이 되었다.
한쪽면만 보도록 키우고 싶어 햇볕도 한쪽으로만 보여주고 나의 옷매무새를 만지듯 줄기들을 만져 벨크로로 묶어주었는데 새 잎이 날 때마다 잎들이 스스로 자리배치를 따로 하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꽃꽂이를 하는 플로리스트처럼 다시 잡아주곤 했다. 줄기가 제법 힘이 있어 억지로는 할 수 없지만 매일매일 만져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알로카시아 한상
길쭉한 하트 잎의 속은 굵은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선이 뻗으면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알로카시아의 잎들이 보통 다 그렇지만 프라이덱만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은 짙은 초록 위로 그려진 하얀 잎맥이다. 무엇보다 프라이덱이 정말 그림 같아 보이는 건 이 하얀 잎맥인 듯하다. 이 잎맥은 유묘일때보다 성체 잎일 때 더 진하게 나타난다.
알로카시아는 과습에 약하기 때문에 보통 화분을 식물보다 작게 잡는다. 물주기는 화분의 안쪽 흙까지 완전히 말린 다음에 하루 이틀 더 기다렸다가 물을 준다. 물을 며칠 만에 주어야 하는지 자주 묻지만 정답이 없다. 그때의 날씨, 그때의 온도, 그때의 계절, 그 집의 습도, 화분의 크기, 식물의 크기, 식물의 상태, 식물이 겪어온 시간 심지어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성격까지 고려대상이다.
보통의 날들은 해를 보고 있지만 가끔 흐린날이나 사진찍는 날이면 내가 볼 수 있도록 돌려놓는다.
나는 식물에 물을 언제 줬는지는 까맣게 잊는 사람이다. 프라이덱도 마찬가지라 물을 줄 때마다 흙 속 상태를 살피고 잎이 조금 쳐지면 하루 이틀 더 기다렸다가 흠뻑 주곤 했다. 그리고는 화분에 뿌리가 꽉 찰 때까지 분갈이를 미루었다. 미룬 것도 순전히 나의 게으른 성격 탓이기도 했다. 프라이덱을 처음 키울 때는 사실 이 식물에 대해 잘 몰랐다. 작은 분이 맞다던지 물주기를 속흙까지 말려야 한다라는 것도 사실 잘 몰랐는데 나의 게으른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에 우연히 맞았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런 행동들이 프라이덱이 좋아했던 거였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프라이덱에 대해 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