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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Jul 11. 2022

식물이 내 마음에 들어오다

당신의 식물 취향은 어떤가요

  초록이 주는 싱그러움이 좋았다. 파란 하늘에 햇살이 가득한 날 올려다본 나뭇잎들의 연두는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투명한 연두와 나뭇잎들이 교집합으로 만드는 또 다른 초록들, 빛이 얼마나 투과하느냐에 따른 초록의 정도는 같은 잎이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수만 가지 모습의 다른 잎이었다.

  일 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고 일 초 후의 나도 다르다, 나의 생각은 수 초만에 타원형의 우주선을 타고 다른 은하까지 날아가 나를 꼭 닮은 외계인과 샷 추가를 한 커피 한잔을 하고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다. 생각들이  나의 모든 에너지들을 바꾸기에 나는 이미 그전의 내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라도 이 순간 나의 세포들은 자신의 숫자로 곱하기를 하며 분열을 하고 나조차도 애도하지 못하는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한 번도 같은 나였던 적이 없다. 변화하는 것들은 아름답다. 흐르는 강물이나 지나가는 구름이나 각도를 달리하며 비추는 햇살에는 늘 마음이 벅차다.

키우는 식물을 모아놓으면 내가 어떤 식물들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식물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줄기에서 새순이 나오거나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고 다정하게 이름까지 지어주었던 초록이가 갑자기 작별인사도 없이 초록별로 돌아가기도 한다. 흐르는 모든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 위해서 식물을 키운다.

  처음엔 싱그러움이 잔뜩 묻은 싱고니움 같은 아이들을 키웠다. 잎이 자주 나고 풍성해져서 금방 초록들이 가득해졌다. 공중 뿌리가 나서 번식도 쉬워서 잘라서 물에다 꽂으면 싱그러움을 어디에나 놓을 수 있다. 한동안 싱고니움의 매력에 빠져 핑크색이 너무 이쁜 핑크싱고니움도 들이고 만져보면 질감이 벨벳 질감이 나는 벨벳싱고니움 또 형광색의 밝은 잎과 핑크색의 가운데 선이 이쁜 골드올루션 싱고니움도 들였다. 싱고니움을 종류별로 한데 심기도 했다.

싱고니움은 처음 좋아했던 식물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엔 최고의 식물이다

  식물 취향은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인지 이번엔 필로덴드론 종류와 알로카시아 종류도 눈에 들어왔다. 늘어뜨려서 키우는 걸 좋아해서 필로덴드론 옥시카르디움 종류를 보기 시작했는데 옥시카르디움 미칸이나 브라질이 치렁치렁하게 키우기 좋았다. 필로 종류를 키우기 시작하다 보니 필로덴드론의 넓은 세계는 헤엄쳐도 될 만큼 넓었고 멜라노크리섬이나 베멜하 글로리오섬 같은 잎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이 상당한 아이들도 키우게 었다. 

필로덴드론 베멜하는 잎이 층을 이루며 올라갔다

  식물은 키우다 보니깐 내가 처음에 싫어하던 식물이 별안간 예뻐 보일 때가 있다. 베고니아가 그러했다. 식물 키우던 초기에는 아무 매력도 없던 식물이었다. 심지어 저런 식물을 왜 키우지 했던 식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는 도무지 떠나지를 않는 것이다. 땡땡이 무늬가 징그러워서 베고니아 종류는 평생 안 키우겠거니 했는데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땡땡이 무늬가 한없이 사랑스러운 이유가 될 줄이야. 마음은 극에서 극으로도 순식간에 옮겨갈 수도 있는가 보다. 마큘라타의 짙은 초록위의 땡땡이는 점잖고 화이트아이스의 밝은 초록 위의 땡땡이는 활발하다. 자니타쥬엘의 넓은 초록잎의 땡땡이는 초록 하늘에 반짝이는 은빛 별 같다.

베고니아가 좋아진 이후로 하나씩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젠 또 어떤 식물을 좋아하게 될까. 식물 취향도 언제나 변한다. 그 변화는 나조차도 예기치 못한 거라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조차 즐겁다. 어느 날은 마음이 사막화되어 거대한 모래산 밖에 남지 않았을 때 뾰족뾰족한 가시 달린 선인장 하나가 무심한 표정으로 훅 들어올 수도 있다. 건조한 마음에 지쳐 사방으로 뻗은 털 달린 러너들이 가득한 고사리가 가진 습도만큼의 축축함이 필요할 때도 있을 수 있다.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고 한다. 취향은 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끌리는 무엇이다. 불현듯 찾아오는 작은 설렘 같은 것, 이제껏 알아왔던 세상에 대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표현 같은 것, 나만의 세계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서 작은 우주를 구축하는 것,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떠도는 구름이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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