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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Jul 13. 2022

책과 식물이 있는 풍경

고요함으로 내면 바라보기

  사각의 방에 두 면을 기역자로 천장부터 이어지는 선반을 놓아 책을 꽂는다. 일부는 세로로 세우거나 큰 책들은 편안하게 누워도 좋다. 누워진 책들이 받침이 되어 세워진 책들의 어깨가 되고 살짝 비스듬히 기댄 책들은 굳이 세우지 않아도 좋다. 누구나 기댈 곳은 필요하니깐. 그리고는 누운책들과 세운 책들 사이엔 식물을 놓고 싶다. 책들 사이로 한 번쯤은 잎의 무늬나 잎의 미묘한 색에 시선이 머무를 수 있도록 식물을 하나씩 놓아둔다. 늘어지는 모습이 좋은 옥시카르디움그린도 놓고 햇살에 잎의 색이 자꾸만 달라지는 미칸도 좋겠지. 잎의 무늬가 이쁜 오레우스스킨의 늘어짐이 아래 선반의 책들을 살짝 덮으면 그 틈새로 제목을 하나하나 읽어서 의미 없는 문장을 만들고 싶다.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고 식물의 그림자들이 책들로 쏟아지면 매 순간순간을 내 망막 렌즈에 담아야지. 잊혀지지 않도록.


책을 쌓고 식물도 쌓는다

  내 마음속의 서재는 늘 다른 모습이다. 어떤 날은 책이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구잡이로 쌓인 책들 사이로 내가 겨우 들어갈 공간만 있지만 책 사이사이나 위로 식물들을 놓아두는 건 잊지 않는다. 책과 식물이 있는 풍경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식물과 책. 물과 친한 식물과 물과 친하지 않은 책 둘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책이 싫어하는 물을 식물이 모두 다 먹어주기에 한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습도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일은 꽤 스릴 있는 일이다.

   

늘어지는 식물과 책은 잘 어울린다

  글자로 가득 찬 책의 언어와 잎으로 가득 찬 식물의 언어는 둘 다 고요로 가득 차 있다. 그 즐거운 고요는 내가 존재하는 공간을 잔뜩 채우고 나의 내면을 살찌운다. 고요로만 가득한 공간에선 밖으로만 향하던 나의 시선이 나의 내면으로 돌아온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나에게서 벗어나 나를 위한 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바라는 나에게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나로 돌아와서 고요의 구석에 자리 잡고 앉으면 나는 몇 겹의 옷을 한 겹씩 벗고 비로소 가벼워진다.

  책과 식물은 그렇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없을 뿐 책 속엔 무한한 경험이 파동으로 존재해서 내가 백만 가지의 생을 살 수 있고 식물의 세포들은 광합성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식물의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이토록 소리도 없이 나를 살리는 산소를 생성하는 거대한 기계란.

라임스킨답서스는 항상 여기에 있다

  높게 쌓인 책들 위로 받침을 놓고 옛날 문어단지에 심은 형광스킨답서스를 올려놓는다. 라임스킨답서스라고도 불리는 스킨답서스는 금방 길게 늘어지기에 높은 곳이 필요하다. 형광의 밝은 색이 쌓아둔 책과 정말 잘 어울린다. 어느새 쌓인 책 보다 더 길어진 스킨이 책을 감싸며 떨어지는 모습은 두고두고 보아도 될 나만의 그림이다.

책과 식물 그리고 벽

  각각의 잎들은 마치 책의 페이지 같다. 초록색 페이지들에는 살았던 날들이 적혀있다. 햇볕도 적절하고 물도 많이 먹어 행복했던 날들이 적혀있고 응애의 습격을 받은 날들도 흔적으로 적혀있고 물을 거의 먹지 못해 죽을 뻔한 날들도 잎들에 적혀있다. 베멜하에는 하루는 아이들이 프로펠러 달린 비행기를 날리다가 잎에 상처 낸 날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잎들을 그날그날을 기록한 일기장처럼 남아있다. 나는 그 일기장들을 읽으며 오늘과 내일엔 더 잘 키워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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