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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Jul 14. 2022

관엽과 고사리들이 좋아하는 계절, 여름

식물들의 여름 나기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짙은 초록의 옷을 입고 햇볕을 다 가릴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잎을 가지는 계절이다. 공기 중에는 많은 물 분자들이 떠다니며 온 세상이 다 거대한 온실이 된 듯하다. 초록들은 사계절 중 가장 축축한 요즈음이 굉장히 즐거운 게 분명하다. 밖을 걷다가 보면 잡초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무성하고 이름 모를 버섯들도 여기저기에서 하얀 살을 드러낸다.

  비와 햇볕을 오가며 젖음과 마름을 반복하는 계절. 여름의 향기는 축축함으로부터 온다.  그 축축함이 주는 번영과 성장의 힘이란 잊었던 기억들도 어디선가 자라는지 지나온 모든 여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모든 좋았던 기억들의 대부분은 여름이다. 어릴 적엔 장마철 비가 한없이 내리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분명 장화와 우산을 나에게 주었는데 웅덩이를 몇 군데 지나가면 어김없이 내 장화엔 물이 가득했고 우산은 내 머리 위가 아닌 내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한없이 돌고 있었다. 비가 오고 난 여름은 그야말로 쨍쨍해서 햇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찬란한 날들이었다. 그저 빨랫줄에 걸려 수분을 걷어가길 기다리는 빨래처럼 햇볕을 쬐였다. 가벼워진 옷차림만큼 내 마음의 무거움은 옷장 속에 꼭꼭 넣어두고 여름만큼은 날아가듯 보냈다.

공중습도가 마음에 드는지 식물들이 잘 자란다

  관엽이 대부분인 집의 식물들도 나만큼 여름을 좋아한다. 실버클라우드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마메이라고도 불리는 필로덴드론과의 식물은 어느새 잎이 7장째이다. 여름이란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는 중인지 얼마 전에 펴지기 시작한 잎은 이때까지 보여준 잎들보다 크다. 은펄 지분이 적절하게 놓인 마메이의  시원시원 큰 잎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 열대의 나라의 정글에 와 있는 듯하다.

  프라이덱도 봄의 기간 동안 꽃대를 세 개나 올리고 자구를 만드느라 성장이 느려졌었는데 번식을 위한 시간들을 이젠 마치고 잎을 내는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 집에는 온실이 없어서 항상 미안한데 요즘 같은 때는 일 년 중 온실을 선물할 수 있는 유일한 날들이다.  

고사리새순들이 꼬물꼬물 올라오는 모습이 너무 앙증맞다

  름은 고사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작은 포트에서 시작해 5년째 함께하는 아비스는 이제 대형화분에서 산다. 길쭉한 잎들이 주는 싱그러움이 좋고 가운데서부터 시작하는 꼬물한 새순들은 나올 때마다 새삼 앙증맞다. 아비스를 크게 키우고 나서 무늬 아비스도 들였는데 무늬 아비스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자라서 이번 여름이 지나면 분갈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바나는 연한 초록으로 곧게 올라오는 아이들이 새로 난 잎들이다. 다른 계절에는 비교적 올라오는 순 자체가 얇게 올라오곤 하는데 여름에는 처음부터 러너에서부터 굵게 올라온다. 고사리들은 처음에 들일 땐 작지만 여름을 한 해 두 해 거듭할수록 덩치가 커져서 고사리를 너무 좋아하긴 하지만 자꾸 들일 수는 없는 점이 너무 아쉽다.

  얼마 전엔 코니오그램을 들였는데 잎맥이 멋있기로는 탄성이 나올 정도이다. 잎 둘레는 톱니같이 거칠고 려한 잎맥이 거대한 공룡들이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 다니고 날개 달린 공룡들이 하늘을 날고 화산에선 마그마가 솟아 나와 흐르는 곳 백악기 어디쯤으로 날 데려간다. 그곳에선 식물들도 공룡들만큼 크겠지.

무늬아비스의 무늬와 코니오그램의 잎맥은 누가 더 멋있는지 경쟁하는 것 같다

  식물원에 가본 적이 있는가. 밖이 쌀쌀한 날씨에도 식물원의 거대한 돔으로 들어서면 옷을 벗어야 한다. 습습한 공기가 온몸을 덮듯이 감싸고 흙과 미생물과 초록의 냄새로 가득한 곳이다. 요즈음은 온 세상이 그 식물원이 된 느낌이다. 고온다습한 이 공기가 식물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공기이다. 요즘 집 안의 식물들이 하나같이 신이 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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