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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Aug 16. 2022

식물이 나를 돌본다

식물이 주는 위안

    햇살을 모아 빛으로 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제든 맑고 화창한 날들을 꺼내어 읽어볼 수 있도록 어느 페이지엔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빛을 넣고 어떤 페이지엔 집안으로 깊게 들어와서 식물의 그림자를 만들던 빛을 넣어야지.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구름은 생크림처럼 하얗고

눈을 감고 하늘을 보면 눈두덩이에 구름이 해를 가릴 때까지 앉아서 쉬고 가던 빛은 24페이지쯤에 넣을까

집안으로 들어와 식물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빛

  때는 내가 볕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식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햇빛이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움직이곤 했으니깐 말이다. 식물들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드는 것처럼 나에게도 햇살은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합성하는 근원적인 에너지였다.

  나와 같은 메커니즘을 가진 식물을 가까이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식물과 같이 있으면 같은 주파수를 가진 무전들이 서로 교신하는 것처럼 식물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것은 무언의 대화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함이다. 고사리들은 바람에 자신들의 흔들리는 가지로 공기를 쓰담 쓰담하며 위로하고 마란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랙털로 나를 명상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식물들의 공간에서 나는 끝없는 고요를 경험하지만 그 고요는 그냥 고요가 아니다. 내면에 강한 생명력을 내재한 고요이다. 적막이 아니라 내면엔 요동치는 힘을 가지고 외면을 조용히 잠재운 근사한 고요이다. 나는 그 근사한 고요를 사랑한다.

마란타의 무늬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안스리움은 새잎이 손톱만 하게 나와서 잎이 갈수록 커진다. 안스리움 호프가 잎을 내었는데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상처가 잎이 커질수록 같이 커졌다. 잎이 작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잎이 커질수록 안스리움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상처도 커짐의 정도에 따라 비례해서 커져갔는데 처음엔 깨끗한 잎에 하나의 흠처럼 자꾸만 거슬렸다. 저 흠만 없으면 아주 완벽한 잎이 될 텐데 하는 마음이 계속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상처가 나의 상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는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선명해지고 커지던 그 상처 말이다. 호프의 상처를 호프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했을 때 나의 오래된 상처도 나의 일부가 되었다.

 버킨의 무늬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그림이다

  식물과 함께 있으면 마음은 결이 생기고 차분해진다. 시든 잎을 떼어주면서  마음의 구석구석의 시들어버린 부분을 떼어내고 먼지 쌓인 잎을 닦아내면서 내 마음의 먼지들도 하나하나 닦아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깨끗해지고 마음이 가지고 있는 무늬도 선명해진다. 그제야 나는 내가 식물을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식물이 나를 돌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고사리의 손들이 모두 나를 위한 안녕이었고 버킨의 무늬들은 모두 나를 위한 그림이었으며 몬스테라의 구멍은 나를 위한 쉼이었다. 식물 안에서 나는 비로소 휴식하며 끝없는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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