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늬싱고니움이 식물 친구가 되었다. 잎 장수는 적었지만 잎 하나하나의 무늬가 다 다른 싱고니움은 흰지분이 많은 이파리부터 초록 지분이 많은 이파리 초록과 흰색의 반반 이파리까지 다양해서 잎들을 들여다보느라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식집사들은 무늬 식물만 보면 마음을 온통 빼앗기곤 한다. 자연은 어떻게 그렇게 근사한 그림들을 그려내는지 무늬 잎 하나에도 풀멍하며 온통 마음을 다 주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풀마다 가득한 무늬며 잎맥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들은 다 하나씩 지워진다.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과 잊히지 않는 기억들 모두가 사라지고 초록만 남는다. 풀멍은 그렇게 나를 비워가는 일이다.
한가닥의 무늬싱고니움
무늬가 있는 식물들은 엽록소가 적어 초록 부분이 적은 변이 식물들이다. 그래서 성장이 무늬가 없는 것보다 느리다. 그래서 천천히 키워갈 수 있다. 식물에겐 결과라는 건 없다. 식물의 수형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게 아니다. 내일이 되어 새잎이 나면 또 새잎의 자리를 마련하느라 식물 전체가 움직이는 게 식물이다. 마치 누군가가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을 때 여럿이서 낯선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주고자 다 같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매번 변화하는 식물에겐 결과는 없고 과정만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죽기도 하고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식물을 보면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식물을 키울 땐 초록의 생을 하나 본다고 생각한다. 그 식물의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그 자손이 살아가고 그 모든 과정을 그저 지켜본다.
한가닥의 무늬싱고니움을 풍성한 수형으로 만들어보았다
한가닥의 무늬싱고니움을 키우다가 길어져서 마디마디에 공중 뿌리 있는 부분을 잘라 물에 담가 놓으면 짧았던 공중 뿌리들이 물을 마시고 하얀 뿌리들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잔뿌리들까지 나면 풍성하게 모아심기를 해본다. 기존에 삽수 잎들은 다 지고 새로 나온 잎들이 가득해지면 흙으로 옮겨 한 줄로 자라던 수형을 풍성하게 바꾸어본다.
식물이 자라는 건 과정이니 그 모든 과정들을 즐기는 건 우리의 몫이다. 한가닥으로 길게 난 수형은 낭창하게 늘어지는 모습이 예뻤고 모아심기 한 수형은 풍성해서 좋다. 그 변화하는 무늬싱고니움의 순간순간을 즐기는 게 키우는 자의 몫이다. 우리에겐 순간을 기록할 사진이라는 것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때그때 남기지 않으면 금방 또 변화하는 그런 찰나들을 하나하나 담아내면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잠깐씩 시선을 두기에 좋은 무늬싱고니움
식물을 키우는 것은 매일매일 그 식물을 살피는 일이다. 우선 그 식물의 보통의 날들의 컨디션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물은 얼마 만에 주면 좋아하는지 햇볕은 어느 정도 주어야 하는지 습도는 얼마만큼을 좋아하는지를 살핀다. 그 보통의 날들이라 함은 그 식물은 시련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그 보통의 날들을 파악하고 난 다음은 다른 이변의 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 식물이 얼마나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 여름의 높은 습도의 날들에 얼마나 견디는지 여행을 가서 물을 많이 주지 못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버티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서 그 식물이 보통의 날들로 회복을 잘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식물을 매일매일 살피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이다.
무늬싱고니움은 물을 좋아하는데 건조에도 제법 잘 견디었다. 햇볕은 커튼을 거친 은은한 정도를 좋아했다. 싱고니움들이 그렇듯 뿌리 성장이 좋아 뿌리가 꽉 차니 성장이 더디어졌다. 공중 뿌리를 잘라 수경을 해두었다가 봄에 심으면 새순을 빠르게 내주었다.
계속 수경으로 번식해서 시간이 만들어낸 무늬싱고니움 개체들
길게 자란 무늬싱고니움 위에를 또 잘라 수경을 해두었다가 또 다른 화분에 심어서 무늬싱고니움 화분이 두 개가 되었다. 원래 화분에는 지지대를 세워 낭창거리는 싱고니움 잎들을 초록색 벨크로로 모아 묶어주었다. 새로 만든 화분에도 이제 곧 지지대가 필요해질 것 같다. 하루하루 성장하며 새로운 무늬 잎들을 만들어내는 무늬싱고니움, 무늬 잎들에 심취하며 오늘도 풀멍을 하며 마음을 비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