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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Aug 17. 2022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식물 안스리움 크리스탈호프

안스리움 크리스탈호프 키우기

줄기는 실같이 가는데
노련한 힘이 있어
큰 잎을 능히 지탱하고
잎맥은 고요하면서 활발해서
내향적 리듬을 지닌듯하다
처음에 날 땐 붉은 기운이 돌며
매우 미약하게 시작하나
점차로 색도 푸르러지며
잎을 키워가 끝에 이르러
비로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으니
얼마나 커짐직한지 기대하는 마음이
심히 두근두근하여
매일매일 곁에 두고 보니
키우는 자의 기쁨도 날로
나란히 커지는 듯하다

흑백의 사진에서 더욱 돋보이는 크리스탈호프의 잎맥

  안스리움 크리스탈호프를 키우다가 끄적여본 짧은 글이다. 안스리움을 알게 된 건 식물의 세계를 처음 알게 된 후 마치 식물의 뿌리가 물을 흡수하듯이 식물에 관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동네 화원에 있는 식물이 세상 모든 관상용 식물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관상용 식물만 해도 엄청난 종류가 있고 한 가지 종류에도 몇백 개의 다른 이름과 생김새를 가진 식물들이 있다는 것에도 많이 놀랐다. 열대식물들은 주로 해외 피드를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는데 안스리움을 처음 봤을 땐 내 영혼이 잎맥에 머무는 바람에 숨이 잠시 멎었고 다시 영혼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다소 시간이 걸렸다. 식물은 그저 초록색의 풀이라는 생각에서 점프하듯 뛰어넘어 하나의 잎은 예술이라는 전환점이 된 것도 안스리움을 보고 나서였다.  하트 모양의 쉐이프가 선명한 클라리네비움이며 큼직하면서 남성적인 느낌의 크리스탈리넘이나 잎맥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한 크리스탈호프를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한 번쯤은 키워보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가 마음속에서  지구의 표면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뜨거운 마그마처럼 솟아오르곤 했었다.

잎 한 장 한 장이 존재감 있는 크리스탈호프

  안스리움 중에서도 클라리네비움을 먼저 맞이했는데 클라리네비움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볼 때마다 사랑고백을 하는 친구의 심장은 아주 천천히 연주하는 음악 같았다. 기존의 잎도 잘 유지하고 잎 끝도 타는 것 없이 조화 같은 모습에 일 년에 한 번씩 기다랗게 꽃이 올라오고 잎도 한 장씩 내어준다. 클라리네비움을 보면 변함없고 오래가는 친구 같다. 일 년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도 잘 지내겠지 하면서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그런 친구 말이다.

  두 번째 안스리움이 크리스탈호프였다. 만져보면 도톰한 질감에 초록색 벨벳 같은 바탕이 있고 은색의 펄이 잎맥을 이루는 크리스탈호프는 잎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물이었다. 크리스탈리넘과 함께 파나마의 열대우림에서 온 이 식물은 정글의 DNA를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을 테지만 여기로 흘러들어온 탓에 봄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야 한다니 식물이라는 개체가 살아있고 환경에 따른 변화를 감당할 수 있다는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다른 식물들과도 케미가 좋은 크리스탈호프

  식물이 자기가 살던 곳에서 계속 살면 좋겠지만 인간은 아름다운 것들은 옆에 두고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듯하다. 멀리서 보는 게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경험해봐야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은 열대우림의 식물도 사계절의 여기로 데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보다 더 지구에 오래도록 있었던 생명체라 그런지 식물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매일의 온도와 매일의 습도를 기록하듯이 저장하고 조금씩 결을 바꾸어가는 식물들을 보면서 적응이란 저렇게 느린 속도로 천천히 꾸준히 나를 바꾸어가는 것이구나를 베운다.  환경 따위는 자신의 생육에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듯 자신을 적응해나가는 게 어쩌면 환경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오롯이 세우는 것임을 식물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실습에서 키우니 잎 끝이 타기도 하지만 나름 적응하는듯하다

  클라리비네움과 달리 크리스탈호프는 성장이 빨랐다. 계절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열대 식물들은 여름을 좋아한다. 높은 온도와 높은 습도에 맞추어진 여름의 습습한 날씨에 다들 열광하는듯하다. 마치 자신이 태어난 곳의 깊은 향기를 맡은 듯 몸을 불려 간다.  봄을 거친 크리스탈호프는 날이 따뜻해지자마자 새순을 내었다. 안스리움들이 그렇듯 처음에는 손톱만 한 잎을 낸다. 얼마나 커질지는 끝까지 커 봐야 안다. 새순이 나고는 매일 아침마다 얼마나 커졌나 보는 일은 새순이 나고 나서 얼마간의 일상의 기쁨이다.  여름이 다가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는지 가지고 있던 잎들보다 나날이 커지는 사이즈에 매일 아침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사이즈업을 하고 나면 연해졌던 잎색이 다크 하게 변화한다. 제법 큰 잎을 마주하니 잎맥의 생동감이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마치 동맥과 정맥이 굵게 있고 모세혈관이 그 주변에 분포하듯 자잘한 펄들이 나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오래도록 풀멍하면서 생각들을 지워 나가다 보면 잡념들은 사라지고 초록만 남는다. 그 초록은 인류보다 오래도록 살아온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초록들은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매력적인 잎을 보면서 풀멍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나를 잊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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