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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Aug 24. 2022

홈 가드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식집사의 사계절

  나무 한그루에는 사계절이 들어있다. 봄이면 꽃을 피워내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을 내고 가을이면 노랗게 빨갛게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얇은 가지만 남긴 채 보내는 사계절이 보인다. 우리는 사계절을 여러 번 살아보았기에 나무에서 사계절을 모두 볼 수 있다. 시간이 되면 이루어질 모든 것들을 안다. 꽃의 화려함이 잠깐이라는 것도 겨울의 앙상한 가지는 봄을 피워낼 준비라는 것도 안다. 우리 안에도 사계절이 있다. 바깥의 풍경이 변함에 따라 우리 내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가진다. 꽃처럼 설레는 봄, 잎만큼 푸르러지는 여름, 낙엽처럼 쓸쓸해지고 마는 가을, 또 다른 봄을 준비하듯 숨죽이는 겨울까지 우리 내면에도 똑같은 사계절이 있다. 풍경으로 겪는 사계절이 있는가 하면 일평생에 걸쳐 있는 사계절도 있다. 꽃피듯 만개하는 유년시절, 푸르러지고 짙어지는 청년시절, 노랗게 익어가는 장년시절, 또 다른 생으로 태어나기 위해 한없이 주글주글해지는 노년시절까지. 해마다 둥근 원의 순환처럼 흐르는 사계절을 바라보면서 살기에 인생이라는 사계절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꽃피는 봄의 나무에서 이 지고 잎이 무성할 것을 보는 것처럼 유년시절에도 청년시절을 볼 수 있다면,  변할 것 같지 않던 푸르름이 언젠가는 노랗게 낙엽 지며 떨어질 것을 알듯이 청년시절에도 장년시절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모든 시간들을 다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여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집안에서는 주로 관엽식물을 키우다 보니 바깥의 풍경만큼의 역동적인 계절적 변화는 없다. 하지만 관엽식물과 몇 해를 같이 살아보니 계절에 따른 나름의 변화가 있었다. 초록들을 유지하면서 보여주는 조금씩의 변화들이 나로 하여금 계절을 준비하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봄엔 아무래도 많은 것들이 깨어나는 시기라 그런지 실내 관엽식물들도 새순이 솟아오른다. 겨우내 잘 자라지 못했던 아이들도 봄의 두드림을 느끼는지 겨울잠에서 동물들이 깨어나서 움직이듯 새순들을 보여준다. 사계절 중에 내내 새순을 보여주는 관엽식물들이긴 하지만 봄엔 유난히 많은 새순들이 인사를 한다. 알로카시아 자구들이나 필로덴드론 삽수들도 봄에 순을 잘 틔우기에 맞추어서 흙에 심어준다. 겨울 동안 수경 했던 싱고니움이나 스킨들도 봄에 맞추어 흙에 심어주면 뿌리도 잘 내리고 새잎도 잘 뽑아내니 번식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심어야 하는 일이 많기에 화분들도 넉넉히 준비해놓고 흙도 가득히 쌓아놓는다. 겨울 동안 주지 못했던 알비료 들도 흙 위에 뿌려주면 봄의 시간들이 초로록 지나간다. 화초들은 아니지만 알로카시아나 안스리움 같은 식물들을 봄이라고 나름의 꽃을 피워낸다. 알로카시아 프라이덱은 올봄에 연달아 꽃을 세 개나 올렸다. 알로카시아 꽃은 육수꽃차례 주위로 꽃을 포엽이 감싸는 모습이다. 도깨비방망이 같은 꽃대에 자세히 보면 자그마한 꽃들이 다글다글 피어있다. 꽃을 피우는 동안 여름은 뜨거운 햇살과 함께 찾아온다.

봄에는 싱고니움이나 스킨들이 새잎을 퐁퐁 내어준다

  여름은 관엽들의 계절이다. 여름의 높은 온도와 습도는 관엽들을 자신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데려간다. 일 년 중 유일하게 마주하는 고온다습의 날씨는 열대에서 온 식물들에겐 향수의 날씨다. 물방울들은 공중에 편재해 있고 열대 정글의 기후를 옮겨온 듯한 후텁지근함은 식물들이 세포를 활짝 열게 한다. 필로덴드론의 마메이 글로리오섬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가장 큰 잎을 내어주면 성장해갔다. 일 년 내내 얼음이던 안스리움 클라라네비움도 선명한 하트 잎으로 느리지만 커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고사리들은 러너 여기저기로 새순을 내기에 바쁘다.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는 모양으로 나와서 오므렸던 손을 펼치고 그다음엔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펼쳐가는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본다는 건 식집사로서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장하는 만큼 물을 많이 먹기에 고사리들은 흙이 마르면 잘 올라오던 새촉들이 마르기에 좀 더 신경 써서 놓치지 않고 물때를 맞춰줘야 한다. 사실 게으르게 물을 주는 편인 나는 여름에 부지런히 물주는 일이 아직도 서툴다. 게다가 여름의 날씨는 비가 내리는 날들도 많고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날들도 많아서 비 오는 날들엔 물 주기를 덜했다가 쨍한 날들에는 부지런히 물을 주어야 한다. 날씨에 따라서도 물주기는 달라지지만 식물 각자의 라이프스타일도 있으니 물주기는 매번 어렵다. 하지만 빅데이터처럼 어떤 날씨에 어떤 식물에 물주기를 하고 어떠한 변화들을 머릿속에 수집하듯 저장한다. 데이터들이 한 해 한 해 쌓이면 갸웃거리면서 주었던 물주기가 어느덧 과감해지고 노련해지는 것이다.

여름의 고사리들은 온몸으로 즐거워한다

  홈 가드너의 가을은 선선함으로 온다. 여름에 몸을 불렸던 관엽들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날씨에 조금씩 적응을 한다. 공원에는 잎들이 어여쁜 색으로 물들어가지만 관엽들은 직도 실내에서 초록으로 싱그럽다. 여름에 볼품없었던 제라늄들의 새잎이 솟아난다. 제라늄들은 겨울에서 이른 봄에 걸쳐서 꽃을 가장 많이 피워낸다. 여름에 한창 더울 땐 잎도 많이 떨군 채 힘들어하다가 가을이 되면 조금씩 잎을 틔워낸다. 가을엔 날이 선선해져서 여름 동안 주지 못했던 비료들도 주고 무엇보다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한다. 겨울에 냉해를 입지 않도록 베란다에 있던 식물들을 하나씩 실내로 들이는 일을 한다. 식물마다 생육온도가 있기에 추워질수록 점차적으로 안으로 들이는 일을 한다. 남향인 집에서 식물을 키우면 여름 동안 빛들이 실내로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해가 안쪽까지 들어오면서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 벽을 비추는 시간이 많아진다. 식물은 빛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식물은 빛으로 이루어진 초록이다. 그래서인지 식물 사진을 찍을 땐 꼭 햇빛을 기다렸다가 찍는다.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모습이 기록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지는 계절이다. 여름 동안 많이 자란 식물들을 가을의 빛과 함께 남겨두는 사진들은 자주자주 꺼내보게 된다.

가을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이 달라지는 식물을 바라보는게 좋다

  겨울은 실내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는 계절이다. 밖은 춥고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실내의 관엽식물들은 여전히 초록이다. 일 년 중에 실내 초록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계절이다. 관엽의 매력은 어쩌면 겨울에 절정일지도 모른다. 밖의 모든 초록이 사라진 지금 실내의 푸르름은 크나큰 위안이다. 다른 계절에는 바깥구경을 하느라 바빴다면 겨울엔 나의 식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밖으로만 향했던 시선이 안으로 들어오는 계절이다. 겨울엔 실내에 가득한 초록을 바라보듯 나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매일매일 집안에 머무르며 식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나의 내면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식물의 잎맥을 보듯 나의 내면의 결을 보고 식물의 잎색을 보듯 나의 내면의 색깔의 채도를 관찰한다. 겨울은 돌아오는 봄에 어 잎들을 틔워낼지 준비하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에너지들은 축척하듯 쌓여간다. 몇 개 있는 제라늄 화분들은 겨울이 되면 하나둘씩 꽃을 피워간다. 꽃이 귀한 시절에 피는 제라늄은 내가 키우는 유일한 꽃이다. 꽃봉오리들이 아래를 보면서 주렁주렁 달리면 하나씩 고개를 들어가며 핀다. 홑겹의 제라늄 꽃은 수수하고 겹꽃의 제라늄 꽃은 화려하다. 채광이 충분하면 잎도 곱게 물든 색을 보여주는 제라늄은 겨울의 보석 같은 식물이다. 이른 봄까지 꽤 오래 피고 지는 제라늄 덕분에 겨울은 따뜻하다.  

겨울과 이른 봄까지 제라늄들은 화려하게 피고 처연하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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