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 다바나고사리의 잎이 흔들린다. 오래된잎들은 원피스의 프릴같이 늘어져있고 새로이 나온 잎들이 옥빛으로 중력을 거스르며 솟아있다. 러너 속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지 모를 새순들은 아직 고사리 손을 펼치지 않고 있지만 줄기가 자라고 키가 크면 꼭 쥐었던 손을 펼치겠지.
누구나 러너 속에서 뚫고 나갈 힘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고 자기 크기만큼의 에너지를 키우는 시간, 그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주고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식물을 키우려면 보이는 시간보다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잘 읽어봐야 한다.
다바나고사리 잎의 색은 청색과 녹색의 중간쯤의 오묘한 색이다
멜라노크리섬을 처음 들여왔는데 몇 달을 지내어도 새잎을 내어주지 않았다. 새잎의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켜보고 물도 주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잎이 나 있지 않을까 싶어 자고 일어나면 가장 처음 눈맞춤하곤 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잎이 났는데 그 뒤로는 언제 뜸을 들였느냐는 듯 길게 길게 자라났다. 후에 몇 번의 식물을 더 들이고 나서야 식물들이 처음 집에 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식물들은 그전에 살던 환경과 우리 집의 환경이 달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 집에 오기 전엔 식물원에서 여러식물들과 함께 식물이 좋아할 만한 매우 습한 환경에서 살았는데 우리 집에 오니 공기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집의 건조함이 낯설었을 것이다. 이제야 새로 온 식물들의 멀뚱멀뚱한 표정들이 보인다.
마치 다른 나라로 날아온 것 같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도 알아듣지 못하니 아무 말도 못 하고 문화도 어색해서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곧 낯선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하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빠르게 적응하는 것처럼 식물도 집안의 공기와 습도를 파악하고 나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참 뒤에야 멜라노크리섬이 매우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미 그 사이 멜라노크리섬은 우리 집의 건조한 날들에 적응하여 자신만의 성장을 하고 있었다. 습하지 않아 잎의 크기는 커지지 못했지만 대신 키를 키워가며 나름의 성장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환경이 있음이 분명한데 식물은 그걸 고집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새로운 환경을 파악한 다음 그 부족한 환경에도 맞추어 성장을 해주었던 것이다.
적응기간을 거친 멜라노크리섬의 키가 쑤욱 자랐다
브랜티아넘도 한줄로 지지대를 세워주며 길게 잎 하나하나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었는데 그만 아이가 놀다가 똑 부러뜨리고 말았다. 나도 많이 놀랐지만 식물도 꽤 충격을 받았던 건지 남은 잎도 하엽지며 줄기인 채로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거의 잊을 뻔하였을 때 한줄기에서 여러 군데로 자그마한 새잎들이 돋아져 나왔는데 그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여러 군데로 돋아나기 위한 힘을 모으기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로 하였는가 싶다.
브랜티아넘은 은색의 펄에 햇살이 비치면 반짝반짝하고 표면이 반질반질하다. 브랜티아넘에 반한 이유는 자그마한 하트잎 때문인데 잎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 더 앙증맞은 하트가 여러개의 사랑을 말할 때 매우 사랑스럽다. 비슷한 은색펄을 가진 소디로이나 마제스틱보다 훨씬 잎의 메탈스러운 느낌이 강하고 펄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많다. 자유로운 수형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브랜티아넘의 모습이 되었다
브랜티아넘은 은빛 펄지분이 많아 메탈릭한 느낌이 강하다
그렇게 식물의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읽어가다 보니 식물들을 기다려주는 일이 즐거워졌다. 잎을 다 내려놓을 만큼의 고난이 왔던 식물들이 줄기만 남은 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더라도 물을 주고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잎을 내고 싹을 틔운다.
사람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누군가가 믿음의 물을 주면서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만 준다면 누구나 다 멋진 잎을 내고 소중한 싹을 틔우지 않겠는가.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설령 온 생애를 걸친 것이라 할지라도 마침내 피어날 근사한 잎이나 꽃을 위해 기꺼이 기다려 줄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