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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an 09. 2020

마산

<세 번째 이야기>

마침내 그가 자리에 돌아왔다.      


그는 무슨 회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자연산 회 小자,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아주머니가 ‘좋은데이’를 내려놓고 가자 그는 못내 아쉬운 듯 빨간 뚜껑 소주를 시켜도 되냐고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술이 그리 센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술냄새를 풍길 수도 없었다. 여자가 그냥 소주를 먹겠다고 하자 살짝 고민하더니, 아무래도 빨간 소주가 필요할 것 같다며 직접 그것을 가지러 갔다. 회가 나오기도 전에 상에는 소주가 각 1병씩 놓였다. 술잔은 금세 채워졌다.


“마산에 오신 걸 축하드려요.”

“정말 그러네요.”


첫 잔을 벌컥 원샷하고 여자가 다시 잔을 채워주자마자, 두 잔째 잔을 또 한 번에 들이켰다. 그는 지금 기분에 꽤술이 받는 모양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회 한 접시가 나왔다.


“이게 뭐죠?”

“방어예요. 맛있어요. 마이 잡숴요.”


여자는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알고 보니 자연산 회가 있었고, 모둠회가 있었다. 언제나 모둠회만 먹어서 몰랐는데, 여자는 사실 모둠회를 먹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가 SNS에 올리고 그가 입맛 다셨던, 바로 그 회를 말이다.  자연산 회는 5만 원, 모둠회는 4만 원. 여자는 이 붉은 살갗의 회가 더 비싸고 맛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먹긴 먹는데, 뭔가 미끄덩하면서도 퍽퍽한 맛이 나는 듯, 첫맛에 반가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도 가지런하게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며 꽃처럼 장식돼 있는 게 쓸데없이 마음에 걸렸다.  


“고급지네요.”

“기름진 맛이죠.”

“그런데 전 입맛이 싸구려인가 봐요.”


남자는 털털하게 웃으며 소주를 한 잔 제 손으로 따랐다. 여자는 황급히 손을 소주잔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요. 그냥 이렇게만 해 줘요.”


남자는 이전에 가르쳐 준 손동작을 다시 보여줬다. 한 손을 살짝 오므리고 네 손가락으로 톡톡톡톡 테이블을 가볍게 치는 동작이었다. 상대방이 술을 홀로 따를 때 외롭지 말라고 그러는 것 같았다. 여자는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어색하게 따라 했다. 그의 술잔은 이미 다 찼고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톡톡톡톡 톡톡톡톡톡..."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는 내일 점심때쯤이나 해서 창원으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다급하게 내일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그가 말했던 등대를 내일 아침에 함께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오늘 저녁에 내려와서 아쉬울 테니 내일 마산 구경을 시켜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작 아쉬운 건 그가 아니라 여자였을 테다.


그는 “아, 그럴까요.”라고 겨우 한마디를 했다. 띄엄띄엄 반응하는 그의 말과는 달리 짐짓 천진난만한 표정은, 여자의 말을 충분히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던 것일까.

 

횟집을 나섰을 땐 이미 시간이 11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여자는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실까 봐 마음이 급했다. 그는 여자의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시장을 나오자 그나마 있던 불빛도 드문드문하고 거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서울과 다르게 지방은 웬만큼 밤이 늦으면 버스도 끊기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잠시 만요, 여기서 방을 잡을까 봐요.”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고개를 살짝 올려다보니 온통 모텔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여자는 그와 함께 모텔 카운터 앞에 섰다. 아저씨는 키를 주면서 여긴 꽤 높은 층이라 아침에 바다가 보일 거라고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로또 5천 원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모텔 방은 걱정했던 것보다 꽤 넓어 보였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자 그는 아무 데도 없었다.     


“여기에 있어요. 내가 물어보고 올게요.”


그는 주뼛주뼛 여자가 계속 따라오자 골목길에 여자를 남겨두고 저 멀리 있는 모텔로 들어갔다. 개중에 제일 최신식의 멀쩡해 보이는 모텔이었다. 무지갯빛 네온사인이 왕관 모양처럼 번쩍이고 있는 옥상, 그 바로 아래층의 불이 켜져 있었다. 그가 저 방에 묵는다면 바다를 볼 수 있을 텐데, 하고 여자는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여자의 집 앞에 있는 도로였다. 바로 조금만 내려가니 낮은 주택가 사이로 덩그러니 높게 솟아있는 아파트가 나왔다. "저희 집은 여기예요." 여자는 아파트를 가리켰다. 그냥 곧바로 타고 온 택시에 그를 다시 태워 보낼 걸,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도착한 게 그에게 헛걸음을 하게 한 것만 같아 괜히 민망해졌다. 거실에는 불이 꺼져있었고 안방에는 불이 켜진 게 보였다.


“아파트가 꽤 크네요.”


여자는 남자가 아파트 평수를 계산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마산이니까요. 서울이면 웬만한 전셋집도 못 구하는 가격인걸요.”라고 말을 할 걸, 여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생각했다.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셨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졸고 있다가 여자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무도 여자가 늦게 들어왔다고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여자는 괜히 서두른 것 같아 후회가 됐다.


베란다를 내려다보며 그와 헤어진 곳을 바라봤다. 그 곧바로 택시를 타고 모텔로 갔을까, 아님 어쩌면 그는 주변을 산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다. 여자는 붕 뜬 마음을 밤 골목 사이사이에 솜뭉치를 쑤셔 넣듯 눈으로 촘촘히 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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