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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y 27. 2021

아빠의 첫인상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아주 단편적이다.


내가 어렸을 적 아빠 (첫 기억, 잘 기억나지 않음.)

내가 고등학생 때의 아빠 (갑자기 대화를 시도하심.)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아빠 (지금 익숙한 모습)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아빠는 바로 '어렸을 적에 처음으로 만난' 아빠였다.


물론 글자 그대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의 얼굴을 처음 만나보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첫인상은 내가 초등학생 즈음이었다.


마치 동창생의 어렸을 적 모습이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을 가듯이ㅡ


나에게 아빠란, 언제나 30대 후반 그때의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아빠라는 기억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술을 좋아하는 아빠다. 아빠는 맨날 늦게 들어오셨다. 술을 많이 먹고 들어오시면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서 술냄새 폴폴 나는 입으로 뽀뽀를 하곤 하셨다. 또 그렇게 아빠가 우리 방으로 직행을 할라치면 엄마는 자고 있는 애들 깨우지 말라고 이래저래 말리느라 분주하셨고, 그래서 종종 아빠는 엄마에게 가로막혀 방문 앞에서만 우리를 빤히 지켜보다 문을 닫고 가셨다. 아빠 생각으론 '곤히 자고 있는 천사 같은 아이들'이었겠지만 사실은 거실의 환한 빛에 눈이 부스스 뜨여 잠이 깬 게 짜증이 나, 아빠가 귀찮기만 했던 아이들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아빠의 직장과 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아빠가 일찍 퇴근하시는 날이어도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맞다, 그때 우리 집엔 뻐꾸기시계가 있었지.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지 않는 날, 아빠가 일찍 오시는 날에는 우리는 현관 앞까지 쪼르르 달려가 "다녀오셨어요~!"를 외치고, 아빠는 자주 선물을 안겨 주셨다. 바로 책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선물은 아빠가 퇴근길 사들고 오신 한두 권의 책. 지금도 기억나는 책을 꼽아보자면, <어린이 명심보감>, <만화 숙영낭자전>, <만화 삼국유사> 등의 역사이야기 책들이 있었고, 웅진출판사 과학소설책들(찾아보니 <원숭이 의사가 왕진을 가요>, <철의 대왕을 울린 나무 아이> 등이 있다), 그리고 지경사에서 나온 세계 명작 소설책들이 있었다. 좀 커서는 <논리야 놀자>,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이야기 한국사> 등의 두꺼운 책들을 사 주셨던 것 같고. 이미 우리 집에는 위인전 전집, 과학 전집 등 많은 시리즈 책들이 있었지만 아빠가 이렇게 한 권씩 사 오시는 책들이 유독 맛깔나게 재미있었다. 그땐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빠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을 다 아시는 걸까?'


아빠는 또 독후감을 쓰면 용돈을 주셨다. 구두를 닦으면 100원, 독후감이 300원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시내에 있는 커다란 문구점에 가서, 아빠는 독후감을 쓰라고 딱딱한 표지의 공책을 사 주셨다. 그 당시엔 그렇게 두꺼운 공책을 사본 게 처음이었다. 근데 독후감 한 바닥을 다 쓰기란 쉽지 않아서 독후감을 쓰고 용돈을 받으면 그건 정말 귀한 돈이었다. 아쉽게도 그 공책은 결국 끝까지 채우진 못했다.


아빠는 항상 나와 동생을 "어린이들~!"이라고 부르셨다. 난 그 말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왜 어린이들이라고 부르는지 아빠에게 물어보았던 것 같은데 그 대답은 기억이 안 난다. 아빠는 "어린이들"이라는 말을 우리가 커서도 가끔 부르시곤 했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30대의 아빠와 같이, 아빠가 기억하는 우리들도 항상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아빠


아빠는 가족들을 데리고 자주 차를 타고 먼 나들이를 계획하셨다. 전국 방방곡곡 국립공원이나 절이란 절은 거의 다 가 보았을 것이다. 요즘도 어디를 가면 "옛날에 와 봤다"라고 항상 말씀하신다. 물론 기억은 안 난다. 그때 나에겐 여기도 산, 저기도 바다, 이 절, 저 절 다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절 차 안에서는 엄마가 열심히 지도를 보시며 지금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수행하시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자주 차를 멈추고 엄마와 함께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실 때가 있었는데, "잘못 왔네" 하고 또 아빠는 운전을 시작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래도, 그때 나에게 아빠는 그 복잡하고 어려운 지도를 백지같은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하는 분이셨다. 국도 몇 번, 몇 번을 가면 톨게이트가 나온다니... '어떻게 저 길을 다 아시지?' 아빠는 정말이지 척척 운전 박사셨다.


그런데 사실 온전히 우리 가족만 여행을 간 적은 드물었다. 항상 다른 가족들과 동반 모임을 했던 게 기억난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빠의 친구분들 가족과 여행을 다녔던 터라, 그 어린아이들끼리도 친구가 되어 나는 새롬이란 친구랑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아빠 친구들은 정말 많았고 또 다들 전국 각지에 있어서, 어느 해는 전라도- 이듬해는 경상도- 이런 식으로 매년 돌아가며 여행을 주최하고 동반으로 가족 휴가를 보내곤 했다.


아빠는 또 동창회에도 적극적이셔서 항상 총무, 회장 등을 하시곤 했다. 예전에 지역 명문이었던 아빠의 고등학교 동창회는 단합이 너무 끈끈해서 비록 학교 졸업은 20년에 했을 지언정, 평생 동창회의 졸업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동창회 운동회에서 먹던 수육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빠는 운동회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술을 드시러 온 것 같았고, 나는 그림대회에서 크레파스 같은 상품을 타는 것이 목적이었다. 흰색 천막과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있던 단상, 아직도 기억나는 그때의 풍경. 동창회를 하던 고등학교 운동장을 나중에 커서 홀로 찾아가 본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매우 익숙했고, 옛날 운동회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가장 진한 기억, 냄새


언제나 아빠 하면 떠오르는, 그리운 아빠 냄새가 있다면 바로 한약 냄새다. 아빠는 한의사 셨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시면 옷에서 항상 은은한 한약 냄새가 났는데, 나는 멀리서도 안 보고도 아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와이셔츠, 아빠의 양복, 아빠의 넥타이 등, 모든 옷에서 빠짐없이 그 냄새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아직도 길가다가 조잡한 한약방 같은 곳에서라도 한약 냄새를 맡으면, 마치 마들렌을 먹으면 과거의 기억 떠오르듯 나에겐 그때 유년 시절 아빠가 떠오르는 것이다.


퇴근 후의 아빠 냄새가 한약 냄새라면, 출근하실 때의 아빠 냄새는 바로 스킨 냄새다. 주로 양말까지 다 신으신 후에 아빠가 두 손으로 "찹찹 찹찹찹!"하고 스킨 바르는 소리는 항상 출근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로 들렸다. 그 스킨 냄새는 아주 진한 어른의 향기 같았고, 우리 집에서 아빠밖에 그런 냄새가 나는 화장품을 쓰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고로 스킨 냄새는 아빠 냄새였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또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담배 냄새. 아빠는 아침에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시면서 담배를 피우셨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풍경이지만 그땐 그랬다. 딱히 나는 담배냄새를 막 싫어하고 그러진 않았는데, 특히 주말에 아빠가 집에 계신 날이면 담배를 피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는 담배를 아주 딱 하고 끊어버리셨다. 그때 이상하게 허전한 느낌이랄까, 그게 바로 아빠의 담배냄새였다.




별 말씀이 없으셨던 평소와 달리 이상한(?) 아빠의 술 취한 모습, 일찍 퇴근하실 때면 언제나 책을 사들고 오시던 아빠, 이 세상 책들을 모두 다 아시던 분.

항상 가족들을 데리고 주위에 많은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를 기꺼워하셨던 분. 복잡한 지도를 다 알고 전국 고속도로를 다 아시는 것만 같던, 척척 운전 박사이셨던 분.

아빠를 상징하는, 항상 좋은 한약 냄새가 우리 집안 기득 맴돌게 만드던 분.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 첫인상.
아빠는 저에게 언제나 그때 그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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