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opopo lett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꽃 May 22. 2024

순수한 다정함

2년 만에 핀 꽃이라며 남편이 좋아했다. 그런데 한 시간 낮잠을 자고 나가 보니, 꽃만 사라지고 줄기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 거다.


“이 앞에 하얀 꽃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꽃만 없어졌어.”
“멍멍이들이 한 게 아닐까?”
“그러기에는 꽃만 떨어졌는데… 희한하네.”


컴파운드 멍멍이들이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정교했고 그래도 멍멍이 말고는 꺾을 이가 없다고 여겼기에 남편은 멍멍이들을 나무랐다. 그만큼 오랜 시간 기다렸다 만난 꽃이라 남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생명체였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이거 아까 말한 그 꽃 아니에요?”


두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집 거실서 그 꽃이 있다는 제보와 함께 사진을 건네받았고, 범인은 ‘우리 집 딸’이었음이 확인됐다.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랬다. 집 앞에 피어있던 하얀 꽃이 자기가 보기에도 예뻤고, 그 예쁜 꽃을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주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손으로 꺾었고, 그것을 선생님에게 선물한 거다. 대가 없이 주고픈 아이의 마음이 꽃보다 더 아름다우니 혼을 낼 수도 없는 노릇, 남편과 나는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니 평소 아이는 자기가 먹던 간식도 “이거 선생님한테 드리고 싶어.”라든지, “저녁에 선생님이랑 같이 밥 먹으면 안 돼?”라며 뭐든 나누고 싶어 했다. 살다 보면 아이처럼 순수한 다정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길고 짧은 것을 재지 않고 자기가 가진 작은 것 하나라도 언제든 주고만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그리울 때가 타지에 살며 한 번씩 찾아온다. 그런데 다정하게 주는 것도 쉽지 않은 때를 살아가고 싶으니, 아이의 이번 꽃잎 사건으로, 아이에게 물려주고픈 미래가 이와 같이 다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의 널뛰기는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