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멈추지 않기 위해 멈췄다

– 축복인데, 계산해야 했던 날들. (7장)

by 이도화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든 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 시절, 결혼한 여승무원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혼은 곧 퇴직이었고, 하물며 아이를 갖는다는 건
선택이 아니라 결단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표를 늘 가지고 다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아도
그게 사회의 통념이었다.


“그래도 이제 가정이 생겼잖아.”
그 말은 축하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일을 내려놓으라는 권유였다.
비행은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락받아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 시절, 회사에서의 나는
미혼일 때만 온전히 성립되는 사람이었고
한 가정의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임시 인력이 되었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출근하는 여자는
성실한 직원이 아니라
무리하는 사람, 욕심 많은 사람으로 불렸다.
야근 비행을 못 하면 책임감이 없다고 했고
야근 비행을 하면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여자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말없이 일을 그만두었다.
자발적인 선택처럼 보이도록
조용히, 깔끔하게, 문제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그 침묵이 오래 쌓여
마치 그 시절엔
여자들이 원래 일을 오래 하지 않았던 것처럼
기억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길로 바로 들어서고 싶지 않았다.


‘일’을 놓는 순간
내 삶의 균형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휴직을 신청했다.
무급이었다.


유니폼을 옷장 깊숙이 걸어두며
주름이 남지 않게 괜히 다시 한 번 매만졌다.
나는 습관처럼 근무표를 꺼내 들어
내 이름을 찾아보았으나
어느 페이지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의 항로에서
잠시 빠져나온 사람이 되었다.


휴직은 쉼표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문장 중간에
갑자기 떨어진 줄바꿈 같았다.
숨을 고를 시간은 생겼는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그 무렵, 마지막 급여 명세서를 받았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조용히 말해 주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금액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며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얼마를 줄이면 몇 달을 견딜 수 있을지,
무급이라는 시간이
어디까지 감당 가능한지.


숫자는 늘 솔직했고
그 솔직함 앞에서
나는 쉽게 낙관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의 등록금이 부족하다는 말,
집 수리비가 조금 모자란다는 이야기였다.
목소리는 담담했고
도움을 바란다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전화 한 통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기댈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집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까지
들어갈 돈은 산 너머 산이었고
삶은 오히려 더 팽팽해졌다.


아이를 품은 채
비행을 하는 일은 무리였다.


나는 회사에 휴직계를 냈고
그 결정은 뜻밖에도
임신, 출산, 유아휴직을
공식 절차로 신청한
첫 사례가 되었다.


급여는 없었지만
직장은 남아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놓였다.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보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이를 품고 있으면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직장이 아니라
다시 가난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추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을 쉰다는 것은
곧 소득이 끊긴다는 뜻이었고
무급 휴직은
생활을 바로 위협하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아이가 생겼고
엄마에게는
삶을 지탱할 기반이 필요했다.


아이와 엄마,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이
한꺼번에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붙들어야 했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멈추지 않기 위해 선택한 멈춤의 순간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직장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축복이면서도 큰 결단과 각오가 요구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자연스럽게 요구되었고, 일을 이어 가는 선택은 많은 설명과 책임, 그리고 감내해야 할 불안을 동반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질문을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삶을 멈추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 실은 삶을 계속하기 위한 가장 치열한 결정이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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