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과 일을 동시에 내려놓지 않겠다고 결정한 한 시절의 기록 (5장)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일하던 곳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일은
곧 내가 쌓아 온 일상을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느냐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보다 먼저
지켜야 할 삶이 있었다.
우산 아래에서 시작된 인연은
생각보다 빠르게
내 삶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삶’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선택이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삶은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의 삶을 선택했다.
포기해야 할 것보다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더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결심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창한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과라면
내 삶의 속도를 잃지 않고도
나란히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감당할 용기를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조금 더 늦게 결혼하길 바랐다.
내가 승무원이 된 뒤,
언젠가는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계셨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회사 동기들도 말했다.
“왜 그렇게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
“결혼하면 회사 그만두는 거 아니야?”
그 시절,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떠나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서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불문율은 있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힘들더라도
버텨 보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사람도,
내가 선택한 일도
쉽게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1992년 11월 1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고
곧바로 혼인신고를 했다.
웨딩드레스는
가장 저렴한 것을 골랐고,
화장과 머리, 결혼사진도
최대한 간소하게 했다.
신혼집은 회사 근처,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작은 빌라였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곳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만든 자리라는 점에서
충분했다.
신혼여행은
회사에서 제공된 무료 항공권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비싼 회 대신
오징어순대를 사 먹으며
이상하게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의 우리는
많이 가지는 법보다
적게 가져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을 했지만
나는 계속 비행을 했다.
눈치도 보였고,
험담도 들었다.
그래도 버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회사에서
거의 처음으로
결혼 후에도 비행을 이어 가는
여승무원이 되어 있었다.
임신과 출산,
휴직을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늘
‘처음 해 보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 모든 휴직은 무급이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더 이상
가난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가장 분명한 확신을 주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갈림길은
깊은 고민 끝에서 갈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
손을 뻗느냐
거두느냐에서
갈린다는 것을.
혼자이던 삶은
어느새
함께 감당해야 할 삶이 되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해,
삶은 아주 천천히
우리 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글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일을 내려놓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스스로 선택한 삶의 한 시절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결혼과 일, 가족과 책임 사이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끝까지 붙잡을 것인지
조심스럽게 고민하던 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의 신혼집에서 시작된 그 선택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남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