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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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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ug 21. 2024

몽중사(夢中死)

꿈속에서 죽다


딱딱한 땅바닥
지긋지긋한 이불
꾀죄죄한 베개
무거운 눈꺼풀

새로이 떠오른 어두운 햇살은
나의 갈라진 목소리와 닮았고
아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서
꿈을 머금은 채 새벽을 흘리다

발 딛던 땅바닥이 꺼지고
어둠으로 끝도 없이 떨어져
녹아내렸다 내 몸이
깨져버렸다 내 눈이

알람이 울리지만 깨지 않았다
흐물거리는 육체와
산산조각난 눈알 덕에
아주 잠시, 늦잠을 잤다

그때 나는 목을 매달고 있었다



<몽중사(夢中死)>, 2019.5


<꿈의 잠결>, painted by wrtn




 꿈에서 자주 내 시체를 목격한다. 사인은 다양하다. 칼에 찔려 바닥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고, 물보라 휘날리는 계곡에서 떨어져 깨지 죽고, 우주 속에 덩그러니 놓여 태양광에 불타 죽고, 손목을 긋고 욕조에 들어가 서서히 죽고, 심플하게 목을 매달고 죽기도 한다.


 신기한 경험이다. 내가 죽어가고 있고, 분명히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내가 죽어가는 광경을 영화 보듯 관람한다.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 같다. 붉게 충혈된 눈알과 시선을 마주쳐 영혼이 빠져나가는 장면은 일종의 쾌감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날도 그랬다. 잠에 들기 싫은 날이었다. 항상 몸을 눕히던 침대, 머리를 베던 베개, 몸을 덮던 이불이 불결하고 꺼림칙하게 느껴져 자기가 싫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이불속에 몸을 밀어 넣고 잠을 청했다. 창문 사이로 옅은 여명이 스며든 게 기억나는 것으로 보아 새벽 5-6시까지 설치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내가 방 한가운데에서 목을 매달고 있었다. 식탁 의자를 밟고, 형광등에 밧줄을 묶고, 올가미를 양손으로 잡아 목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툭, 떨어졌다. 생명이 사그라드는 신호였다. 그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했다.




 그날 아침 나는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별다른 일정 없는 주말이어서 다행이었다. 침대에 앉은 채 10분도 넘게 넋을 잃었다. 튼 사이로 기어들어온 햇빛은 나를 재촉하는 듯했다. 몸을 일으켰다. 끔찍이도 피곤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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