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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un 26. 2022

모태솔로의 비애

‘사랑’을 모르는 인간의 슬픔

나는 모태솔로다. 태어난 지 거의 8000일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이 나이까지 연애를 안 해 본 것이 엄청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연애를 안 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건,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모태 솔로가 나타났다!


뭐?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에이~ 구라 치고 있네. 내 친구들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내가 모태솔로인 건 잘도 납득하면서(나쁜 새끼들…) ‘여자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은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사실이다. 나는 살면서 좋아하는 누구 때문에 가슴이 콩닥거린 적도, 설렌 적도,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적도 없었다.


친구들이 연애썰을 풀 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리액션만 할 뿐이었다. 흥미진진했지만 공감은 안 됐다. ‘누구 좋아하면 막 이러잖아’ ‘그래, 맞아 맞아.’ 모두가 공감할 때, 나 혼자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의문을 제기했다. ‘누굴 좋아하면 그런 멍청한 짓까지 한다고? 진짜?’


고등학생 때는 진지하게 내가 게이인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성적지향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나는 분명한 이성애자였다. 그런데 왜 좋아하는 사람은 안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다. 성적지향과 비슷한 개념인 연애지향이란 것도 있다는데, 그걸 알아봐도 모르겠다. 내가 무연애지향인 건지, 아니면 아직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난 건지.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내가 모솔이라는 사실도 그다지 개의치 않다. 물론 친구들이 모솔이라고 놀리는 건 빡치지만, 놀리는 것도 하루 이틀뿐이다. 그리고 요새는 놀리는 사람보다는 연애 언제 할 거냐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늘었다. 좋은… 거겠지?


반대로 나는 비연애주의자도 아니고, 비혼주의자도 아니다. 모솔 경력이 길어지다 보니 나를 비연애주의자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연애나 결혼을 거부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연애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대학 가면 애인 생긴다고 했잖아…




연애를 못 해봐서 불만인 점은 없다. 연애를 안 해도, 짝사랑을 안 해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괜한 마음고생 안 해도 되니 더 편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억울한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좋아한다’라는 감정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랑’, 연인 간의 사랑은 몇천 년 전부터 인류의 문화를 지배한 주제다. 각종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사랑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극이든 거의 다 사랑 타령밖에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소설, 시, 에세이 등 모든 문학 작품에서 사랑은 인기 있는 주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작 중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소재다.


한국 드라마 특) 군인도 연애하고 의사도 연애하고 외계인도 연애하고 도깨비도 연애함


어설프지만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브런치에는 산문만 올리고 있지만, 시나 소설 같은 문학글도 종종 쓴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주제로 글을 쓰지 못한다. 누군가를 짝사랑한 적조차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사람들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한편으로는 애절한 사랑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사랑은 거의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것을 모른다는 건 문학글을 쓰는 데 치명적이다. 사랑을 주제로 쓰기는 당연히 힘들고, 캐릭터나 묘사도 경직되기 일쑤다. 연인의 사랑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작가는 묘사를 정말 아름답고 탁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인간이 연인을 묘사하면 흉내에 불과한 묘사밖에 하지 못한다. 결국 글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은 ‘이게 뭐야?’가 된다.


나는 모든 글의 기본은 ‘설득’이라고 생각한다. 논설문뿐만 아니라 문학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쓴다면 소설을 읽는 독자가 소설의 이야기와 이야기 전개 방식, 인물의 행동과 성격을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설득에 실패하면 독자는 이상함을 느끼고, 감정이입을 멈추며, 곧 흥미를 잃게 된다.


내가 묘사한 사랑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많은 글을 읽고, 수백 번 글을 고쳐 써도 흉내에 그친 글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결국 나는 사랑에 관한 글은 절대 쓰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글을 쓰는 데 큰 제약이 된다.


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왜 좋아하는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는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슬프다.


성격도 날 안 도와준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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