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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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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ul 26. 2024

내 처음 눈을 뜨니 세상에는 눈발이 휘날렸소

탄생과 향수


선생이라던 작자가 언젠가 말했소
사계의 시작은 봄이고 끝은 겨울이라 말이오
다른 동급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째선지 나는 그자에게 불만을 품었소

이 몸 십일월 늦가을에 태어나 한동안 눈 뜨는 법 몰랐는데
겨우 눈을 뜨니 나를 바라보는 부모와 눈이 마주쳤고
요람 바깥에는 눈발이 휘날려
나의 세상을 白으로 물들이고 있었소
내 세상과 처음 만날 때 온통 겨울이었으니
나에게 사계의 시작은 당연 겨울 아니겠소

겨울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나는
미어지는 한기에 겁먹어 서럽게 울어댔고
부모는 화들짝 놀라 나를 품에 안고서는
겨울이 다 가도록 나의 눈물 닦아주었소

봄이 오면 그제서야 너무 멀리 떠나온 기분 들어
견디기 버거운 향수가 사무친다오
그리운 나의 고향 그 추운 계절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니
겨울 오면 입김 따라 고향으로 떠날 거외다.



<내 처음 눈을 뜨니 세상에는 눈발이 휘날렸소>, 2022.3


2022년 2월, 강의실 가는 길




 사계절 중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도 없이 겨울을 택한다. 일단 봄 가을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고, 여름은 덥고 습하고 모기가 많다. 어찌 겨울이 좋다기 보단 다른 계절이 싫은 모양새이지만, 정말로 겨울이 좋다.


 겨울의 단점이라고는 춥다는 것 말곤 없지 않나. 그런데 나는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 패딩도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잘 안 입고, 그마저도 롱패딩은 살면서 한 번도 입은 적 없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것은 나 같은 집돌이에게는 오히려 땡큐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온다.


 눈은 내가 치우는 게 아닌 이상 좋다. 그저 새하얗고 차가운 존재. 어릴 때부터 나는 눈을 좋아했다. 장갑도 끼지 않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을 꾹꾹 뭉쳐 던지며 았다. 손이 꽁꽁 얼어도 눈사람을 한 번 만들기 시작한 이상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했다. 어린 나는 그저 눈이 온다는 사실만으로 겨울을 기다렸다.


 11월에 태어난 것도 운명 같이 느껴진다. 11월에 태어나 몇 주 동안 눈을 못 뜨다가, 겨우 눈을 뜨니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새하얀 눈이 휘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때 풍경이 가슴속에 강렬히 자리 잡아서 겨울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한다.




 돌아가고 싶다. 내가 태어난 그곳으로, 그때로. 이 향수는 잊을 만하면 툭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갈망할 뿐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내 고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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