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하늘의 경계 그것을 선으로 따고 싶었지만 나는 파란색과 푸른색도 구분 못 하는 얼간이라서 그냥 멍청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궁금했습니다 하나 확실한 건 나와 타인 사이에는 절취선이 있었습니다 나는 얼간이라서 선을 따라 오리기만 했습니다 잘려 나간 나는 멀찍이 떨어져 구경했습니다 타인들이 경계 따위 없는 양 뒤섞이는 모습을 그것은 불가해한 현상이었습니다 나는 포기했습니다
파도 소리 들려오는 하늘 너머에 나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왔습니다 선홍빛 파스텔로 색칠된 하늘 하늘과 하늘의 경계에 나의 분실물이 놓여 있습니다 *
<이방인>, 2022.6
* 마지막 연은 다니카와 슌타로의 <슬픔>을 인용했습니다.
<하늘과 하늘의 경계>, painted by Midjourney
알베르 카뮈(1913~1960)
학창 시절 학교에서 툭하면 가정통신문을 줬다. 가정통신문은 뭐라 뭐라 알기 힘든 말과 함께, 부모님 서명을 받아오라는 네모칸이 있었다. 그 네모칸 위에는 - - - 가 한 줄로 쭉 이어져 있고, 한가운데에 '절취선'이라 적혀 있었다.
가정통신문은 인간적으로 너무 많았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느라 늘 피곤하신데 이렇게 많은 가정통신문을 어떻게 처리하실까. 부모님의 피로를 덜어드리기 위해 우리는 아침에 책상에 앉아 급하게 어제 받은 가정통신문을 꺼내 부모님 싸인을 서툴게 흉내 냈다.
절취선이 문제였다. 이놈의 절취선을 잘라야 하는데, 가위를 가지고 다닐 만큼 준비성이 철저한 아이는 드물었다. 결국 절취선을 접어 손톱으로 꾹꾹 눌러, 온 집중을 다해 조심스럽게 뜯었다. 하지만 걸핏하면 종이는 찍 소리를 내며 흉하게 찢어졌다. 잘라진 경계는 절취선처럼 반듯하지 못하고 너덜너덜했다. 선생님은 너덜한 가정통신문을 보며 화를 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절취선이 있다. 나는 그 절취선을 따라 찢었지만, 항상 너덜너덜하고 흉하게 찢어졌다. 찢겨 나간 나는 다른 사람들이 경계 따위 없는 양 뒤섞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의 경계에는 절취선 대신 접는선이 있는 듯했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를 '일상에서 느끼는 괴리감, 불가해함' 쯤으로 정의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부조리를 느꼈다. 선을 따라 오릴 줄만 아는 나는, 아마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갈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