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었다. 워낙 우울하기로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우울증 환자로서 안 읽어주면 실례라는 핑계였다. 소설 속 요조는 너무나도 유악한 인간이었고, 그로 인해 파멸했다. <인간 실격>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드럽게 재미없고, 우울하고, 울적하고, 읽을 때마다 괜스레 처절해지는 소설이었다.
어른은 아이에게 동요를 가르친다. 현실의 고달픔은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일까, 동요 속 가사는 언제나 희망과 찬란으로 가득 차다. 하지만 어른의 생각보다 아이들은 훨씬 시니컬하다. 이 세상이 동요마냥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요에 반발심을 품고, 제멋대로 이상한 가사로 개사해서 부르고 다니는 것이다.
가장 어이없는 동요는 이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니. 이만한 기만이 대체 어디 있을까. 모든 인간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면, 티브이 속에 가정폭력, 아동학대 따위의 단어는 나와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어린 나는 이 동요를 부를 때마다 속으로 역겨워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니. 대체 '사랑'과 '사람'이 무슨 상관이냐고....
멍청한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은 사랑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가여운 존재라는 걸, 너무나 늦게 깨달아버렸다.요조가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생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책을 4번이나 읽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인간'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지금도 고통받고 슬퍼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주제에 '사랑' 없이 살아왔다.사람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큰 죄를 짓고 말았다. 주위에 맘 놓고 함부로 사랑할 존재 하나 없는 나는, 말 그대로, 사람실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