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술집에 가봤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평생 술을 마시지 않겠다' 따위 다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직 술을 먹기엔 겁이 나서 먹지 않은 상태였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솔직히 술을 마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할 때였다. 그래, 사람이 어떻게 술 안 마시고 살겠어. 만약 선배가 술을 권하면 한번 마셔보자. 이 따위 생각을 속으로 하며 술집에 들어섰다.
신입생 환영회는 학교 앞 큰 술집에서 벌어졌다. 저녁 7시즈음이었는데 이미 사람이 가득 들이차 있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술냄새 풍기며 웃고 떠드는 무리가 테이블마다 자리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테이블 7개가 비어져 있었다. 우리 과에서 예약한 자리였다. 테이블에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신입생 3-4명이 팀을 이뤄 각 테이블을 돌아가는 형식이었다.
선배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내려 야단이었다. 잔뜩 긴장해 얼어 있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쏘아댔다. 술을 한 번도 마신 적 없다는 나한테 들어온 질문은 뻔했다. 왜 술을 안 마시냐, 종교 때문이냐, 계속 안 마실 거냐, 사람들이랑 어떻게 친해지려고 그러냐....
한 선배는 술을 왜 안 마시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 잠시 방심한 나는 그만 "그냥 술이 싫어서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선배는 정색하며 말했다. 다음부턴 그딴 식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걍 종교 때문이라고 둘러대라고. 싸가지 없어 보인다고.
숨이 막혔다. 술집의 분위기도, 술 취한 이들의 취기와 온기도 모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나는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술집 앞 차도에 차가 쌩쌩 달리고 있었다. 순간 저 차도로 몸을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차가 지나고 얼굴에 돌풍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관계 속에서 나는 항상 사람을 두려워했다. 먼저 다가가지 않고, 어쩌다 친해진 사람도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멀어진다. 이러한 성향에 병명을 붙인다면 '사람공포증'이 딱 들어맞을 듯하다.
이따금씩 나는 절망한다. 사람을 무서워하면서도, 그런 나 자신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사람의 온기와 취기에 질식사하고, 혼자 동떨어지면 고독사하는 내 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