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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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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ug 16. 2024

모친상

내게 웃는 법 가르쳐주시던 어머니


삶은 얼굴에 주름으로 기록된다며

내게 웃는 법 가르쳐주시던 어머니

허나 미련한 저는 당신 떠난 이곳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모친상>, 2021.2


<안개꽃>, painted by MS Image Creator




 엄마는 식물을 좋아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온갖 화분이 있었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화분에 물을 주고,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겨울이 되면 베란다에 있던 화분을 죄다 집안으로 옮기고, 봄이 되면 다시 베란다에 내놨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탓일까, 식물들은 잘 자랐다. 너무 잘 자라서 문제였다. 책장 위에 올려두었던 놈은 점점 길게 자라서 천장을 뒤덮질 않나, 날씨가 추워질 때 뜬금없이 열매를 피우질 않나....


 엄마는 꽃이나 열매가 필 때면 나를 불렀다. 내가 아무 감흥 없이 대꾸해도 엄마는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했다. 이 아이는 엄마가 시집올 때 함께 온 아이다, 아직도 안 죽고 꽃을 피웠네, 참 예쁘지 않니....


 엄마는 꽃 중에서 안개꽃을 제일 좋아했다. 작은 흰 꽃이 안개처럼 흐드러지는 놈이다. 보통 꽃다발에서 메인 꽃 주위에 엑스트라처럼 꽂히는 녀석이다. 그 별 볼 일 없는 꽃을 엄마는 유독 애정했다.


 하지만 나는 안개꽃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안개꽃을 좋아하는 게 싫었다. 어린 나는 흰꽃은 곧 죽음을 뜻하는 줄 알았다. 죽음을 상징하는 꽃을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나로서는 엄마가 죽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꽃은 저문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내 엄마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날 것이다. 이것은 슬프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말 그대로의 사실일 쁀이다. 부정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언젠가 마주해야 할 슬픔이다. 훗날 엄마가 죽고 나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되도록이면 울지 않고 환하게 웃는 당신의 액자 앞에 안개꽃 한 다발 놓을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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