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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두리 Oct 19. 2018

북극곰 ‘통키’를 아셨나요?

21 - 사연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

북극곰 '통키'의 마지막 하루 Part 1 영상, 2018.10.17, by 비두리

북극곰 ‘통키’는 에버랜드 주토피아 동물원에서 살았던 한국의 마지막 북극곰이에요. 통키의 이름은 1990년대 유행하던 만화영화 ‘피구왕 통키’에서 따왔다고 해요.     

 

수컷 북극곰 통키는 1995년 11월 19일 경남 마산 돝섬해상유원지에서 태어났어요. IMF 위기로 마산 돝섬해상유원지가 문을 닫으면서 1997년 동갑내기 암컷 북극곰 ‘밍키’와 함께 에버랜드로 이사 왔어요. 암컷 북극곰 ‘설희’는 1978년생으로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 살다가 1998년 에버랜드로 왔어요.


왼편부터 '설희'와 '통키', 2013, photo by 비두리

통키는 암컷 설희, 밍키와 함께 에버랜드에서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밍키가 19살의 나이로 먼저 2013년 세상을 떠났어요. 이듬해인 2014년 설희마저 37살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갔어요. 통키는 친구들을 보내고 에버랜드에 홀로 남겨졌어요. 그리고 2017년 1월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살았던 암컷 북극곰 ‘남극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통키는 한국에서 유일한 북극곰이 됐어요. 북극곰의 평균 수명은 25년이라고 해요. 사람 나이로 하면 70~80대 고령이에요.      


'삼손', 2010, photo by 비두리

1980~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동물원에는 17마리의 북극곰이 살았다고 해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대표적인 북극곰은 수컷 ‘대한’이와 암컷 ‘민국’이에요. 대한이는 노령으로 2007년 생을 마감했어요. 이어 민국이도 추정나이 30살로 2008년 하늘나라로 갔어요.


이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는 2010년 10월 29일 러시아 레닌그라드 동물원으로부터 위탁받아 전시한 ‘삼손’(2010년생)이가 있었어요. 하지만 임시 대여한 북극곰이었기에 삼손이는 2011년 2월 중국으로 갔어요. 삼손이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의 마지막 북극곰이에요. 서울대공원은 북극곰을 전시하지 않요.


왼편부터 '썰매'와 '얼음이', 2011, photo by 비두리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는 수컷 북극곰 ‘썰매’와 암컷 북극곰 ‘얼음이’가 살았어요. 1984년 태어난 썰매와 1995년 태어난 얼음이 둘 다 통키처럼 경남 마산 돝섬해상유원지에서 살다가 2001년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으로 왔어요. 얼음이는 통키와 같은 해에 마산 돝섬유원지에서 태어났어요. 북극곰은 1~2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어쩌면 얼음이는 통키, 밍키와 같은 형제자매 지간일 수도 있어요.


썰매는 29살의 나이로 2012년 7월 2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생을 마감했어요. 얼음이는 썰매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홀로 외로워하다 20살의 나이로 2014년 10월 하늘나라로 갔어요.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썰매와 얼음이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해양관에 두 북극곰 동상을 만들었어요.


'남극이', 2012, photo by 비두리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는 암컷 북극곰 ‘남극이’와 수컷 북극곰 ‘북극이’가 살았어요. 둘 다 해외 동물원에 살다가 한국으로 온 북극곰이에요. 남극이는 1985년 12월 스페인의 한 동물원에서 태어났어요. 북극이 역시 1980년 스페인의 어느 동물원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자료가 자세히 남아있지 않아서 어느 동물원인지는 모른다고 해요. 남극이와 북극이는 2002년 대전으로 왔어요. 둘은 ‘대전 북극곰 부부’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하지만 북극이는 25살의 나이로 한국에 온 지 3년 만인 2005년 12월 세상을 등졌어요. 그리고 남극이는 홀로 12년을 더 살고 32살의 나이로 2017년 1월 하늘나라로 갔어요.      


'통키', 2018.3.7, photo by 비두리

에버랜드에서 22년의 세월을 보낸 통키는 올해 24살이 되었어요. 북극곰 평균 수명에 다달았어요. 지난해 7월 통키가 살아온 열악한 환경이 동물권 단체 '케어'에 의해 알려지면서 동물권에 대한 큰 논란이 일었어요. 에버랜드는 새로운 친구를 맺어 주고 안락한 노후를 지원하기 위해 통키를 올해 11월 영국 요크셔 야생 동물원으로 보낼 예정이었어요. 2009년 4월 문을 연 영국 요크셔 야생 동물원은 4만m²의 북극곰 전용 공간을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생태형 동물원이에요. 현재 빅터, 픽셀, 니산, 노비 등 4마리 북극곰이 살고 있다고 해요. 통키는 이 네 마리의 북극곰과의 만남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었어요.    


저는 동물원 연작을 하면서 에버랜드 동물원을 2~3년마다 한 번씩 찾곤 했어요. 올해 3월 에버랜드에 다녀와서 이미 통키를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어요. 11월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기에 통키를 마지막으로 본다는 생각에서 10월 17일 에버랜드 동물원에 다녀왔어요. 이날 여러 번 북극곰사로 찾아가서 통키를 지켜봤어요. 통키는 엎드려 있기도 하고, 수영을 하기도 하는 등의 평범한 일상을 보냈어요.   


'통키', 2018.10.17, photo by 비두리

에버랜드 동물원이 문을 닫는 오후 6시를 한 시간 앞두고 오후 5시부터 북극곰사 앞을 지켰어요. 내실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는데, 통키는 들어갈지 말지를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자꾸만 관람객들이 있는 곳을 돌아다봤어요. 통키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걸까요? 통키는 오후 5시 30분 내실로 들어갔어요. 보통 오후 6시까지 있는데 방사장에 있는 수영장 물청소를 위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들어간 거예요. 동물원이 문 닫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에버랜드 동물원을 돌아봤어요. 오후 6시가 다 되어 다시 북극곰사로 왔어요.      


에버랜드 북극곰사에 관람객들이 통키에게 전하는 포스트잇, 2018.10.17, photo by 비두리

통키는 오후 6시경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그 시각 북극곰사 인근 의자에 앉아 촬영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마음속으로 ‘통키야, 잘 있어. 영국으로 잘 가렴.’ 같은 인사말을 했는데, 그때 통키는 하늘나라로 갈 채비를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네요.


영국으로 가기 전 통키의 모습을 보러 간 것인데, 통키의 생애 마지막 날을 힘들게 했던 관람객 중의 한 사람일지도 몰라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입니다. 늘 동물원에서 가면 조용히 사진을 찍곤 하는데요. 노령이었던 통키에게는 어쩌면 그것마저도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육장에는 바닥과 벽이 모두 시멘트로 돼 있어 21년간 흙 한 번 밟아보지 못한 채 전시동물의 삶을 살아왔다.’고 했던 경남도민일보 박종완 기자님의 2018년 9월 28일 자 기사가 사실이기에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통키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통키는 살아생전 흙은 밟아보지 못한 채 시멘트 바닥에서 평생 살았습니다.     


왼편부터 '얼음이'와 '썰매', 2011, photo by 비두리

저는 2009년부터 동물원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남극이의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된 썰매와 얼음이의 뒤늦은 부고 소식은 제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한참 후에 알게 됐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우리에서 보이지 않으면 다른 동물원으로 갔구나’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을 그저 사진의 피사체로만 여겨 사진을 잘 찍는 데에만 신경 썼지 동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책감은 더욱 컸습니다.     


썰매와 얼음이의 죽음 이후, 동물들을 더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올해는 동물원에 더 많이 가게 되면서 하나둘씩 동물들의 이름을 외우고, 기억하고 습니다. 그래서 올해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죽음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가장 큰 아시아 코끼리였던 ‘칸토’가 6월 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달이 채 안 되어 8월 5일 아시아 코끼리 희망이 아빠 ‘가자바’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가자바는 죽기 3일 전 봤던 터라 마치 지인의 죽음처럼 슬펐습니다.


불과 한 달 전인 9월 18일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우리를 나온 퓨마 ‘호롱이’가 4시간 만에 사살되었습니다. 호롱이가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살았던 2010년에도 동물원 연작을 했기에 제 동물원 연작 작업 폴더 어딘가에는 어렸을 때의 호롱이의 사진이 있습니다. 호롱이의 존재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호롱이의 죽음을 접하고는 역시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원 연작을 10년 가까이하고 있지만, 제 존재 역시 미비하기에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글과 사진을 내보이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없다는 현실에서 무기력했던 것도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에서 사진을 하고 있고, 동물원을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목표에서 동물원 연작을 시작했지만, 10년을 작업하고도 정작 제가 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죽어나가는 동물들이 계속 있음에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통키', 2018.10.17, photo by 비두리


북극곰 통키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실시간 검색어를 비롯해 뉴스, 커뮤니티, SNS 등에서 이슈가 되었던 10월 18일은 공교롭게도 호롱이가 죽은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호롱이가 죽던 날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동물원을 폐지해주세요’ 청원은 6만 4천757명이 참여한 가운데 10월 18일 마감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동물 권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고 마는 게 현실입니다.


통키는 한국의 마지막 북극곰입니다. 통키는 행복했을까요? 마지막 가는 길은 평안했을까요? 통키의 명복을 빕니다. 통키가 하늘나라에서는 설희, 밍키와 만나 행복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비두리(박창환)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궁 동물원은 1907년 만들어져, 1909년 11월부터 일반인에 공개됐습니다. 창경궁은 1911년 창경원으로 개칭했습니다. 창경궁 복권 계획에 따라 1977년부터 과천에 서울대공원 건립계획을 수립해 1983년 창경원 동물원을 이전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1984년 5월 1일부터 문을 열었습니다.  

2009년은 한국에서 동물원이 개원한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캐치프라이즈는 ‘지나온 100년, 다가올 100년’입니다. 그리고 2009년은 제가 동물원 작업을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작업한 제 동물원 연작은 한국에서 동물원이 만들어진 1세기가 지나고, 2세기를 맞이한 10년의 기록입니다. 더불어 10년 동안 살고 있거나 죽은 동물원 동물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세상을 떠난 북극곰 '썰매', '얼음이', '남극이' 그리고 '통키'. 코끼리 '칸토', '가자바'. 퓨마 '호롱이'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살고 있지만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유배되어 살고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의 사진도 있습니다.

제 동물원 연작으로 동물원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들이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연작] 동물원 작가노트 (추후 '303번째 동물원' 전시회 초안)


북극곰 '통키'의 마지막 하루 Part 2 영상, 2018.10.17, by 비두리


북극곰 '통키'의 마지막 하루 Part 3 영상, 2018.10.17, by 비두리


북극곰 '통키'의 마지막 하루 Part 4 영상, 2018.10.17, by 비두리


북극곰 '통키'의 마지막 하루 Part 5 영상, 2018.10.17, by 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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