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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 Oct 06. 2022

모카포트의 별이 되다

스텔라 모카포트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건이 참 많이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한집에서 여럿이 살다 보니 각자의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고 좋은 물건에 욕심이 생겨 이것저것 사들인 탓도 있겠지만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다. 평균에 비해 부족한 주거면적이 아닌데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은 포화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1인당 주거면적은 29.7제곱미터, 서울의 경우는 26.6제곱미터라고 한다. 한 평은 한 사람이 팔과 다리를 충분히 뻗은 채 누울 수 있는 면적이라는데 이는 약 3.3제곱미터로 환산할 수 있다. 29.7제곱미터는 아홉 평에 해당하고 아홉 명이 편히 누울 수 있는 면적이니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부족한 공간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 집의 문제는 사람이 자유롭게 돌아다녀야 할 공간을 물건이 차지하고 있으며 미니멀리즘을 대놓고 반대하는 누군가의 입김이 너무 강해 해결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이 아예 없지는 않아서 물건을 정리하려는 시늉을 하기는 한다. 발에 채는 물건들을 대용량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려는 시도를 간혹 하는데 50리터 종량제 봉투가 채워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봉투 때문에 오히려 집이 더 어수선해진다. 가끔은 중고장터를 이용해서도 물건을 정리한다. 구입은 했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나 한동안 잘 사용했지만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은 꽤나 많다. 언젠가 쓸 날이 오겠거니 보관을 해두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사실 잘 알고 있다.


중고가는 물건의 상태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기에도 일종의 적정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같은 품목의 예전 거래 내역을 살펴보면 큰 차이 없이 일정한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구매하려는 사람 역시 이 가격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 가격대가 곧 시세가 된다. 중고 제품의 시세는 당연히 구입 가격에 미치지 못하고 사용한 제품은 감가상각의 폭이 훨씬 크다.


예외가 있기는 하다. 되팔이들이라고 불리는 리셀러들이 존재하는 명품 시장에서는 일명 ‘피’라고 하는 프리미엄이 붙은 채 중고물품이 거래된다. 단, 이 경우에도 실사용이 없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제품에 한해서다. 그런데 십 년 넘게 사용을 한 제품의 중고가가 출시가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는 기이한 물건이 있다. 명품이 아닌 한낱 모카포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은 이태리고 모카포트의 종가 역시 이태리다. 핸드드립이나 사이폰, 더치커피의 경우 일본의 영향이 지대하고 도구 역시 일본 제품의 비중이 무척 크지만 에스프레소와 모카포트는 사정이 다르다. 유럽인들 특히 이태리인들에게 에스프레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뿌리 깊은 것이기에 누군가 함부로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이태리 전체 가구의 구십 퍼센트가 모카포트를 소유하고 있다는데 일리나 라바짜 같이 이름난 원두커피 브랜드가 이태리에 유독 많은 것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었다.


모카포트 브랜드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비알레띠고 지안니니, 일사, 안캅 같은 브랜드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 모카포트를 구입할 때만 해도 국내에 출시된 모카포트는 대부분 알루미늄 재질이었고 스테인리스 재질의 모카포트는 스텔라 브랜드가 유일했다. 알루미늄 모카포트는 가격이 무척 저렴했지만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제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쓰지 않는다.



모카포트는 우리 집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커피 기구는 아니다. 모카포트를 구입할 당시에는 핸드드립 커피를 주로 마셨고 요즘은 사이폰 방식의 커피를 마시는데 모카포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중고로 처분할까 잠시 생각했었다. 모카포트를 사용하고 나서 닦고 말리는 일이 번거로워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려다가도 주저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


시세라도 알아보려 중고장터에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이십만 원이 넘는 금액에 스텔라 모카포트가 거래되고 있었는데 대부분 거래가 성사된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물건을 그 가격보다 비싸게 산 것 같지는 않아 쇼핑몰에서 과거의 거래내역을 하나씩 검색했고 2011년 당시 구입가가 십사 만 원에 조금 못 미쳤다는 기록을 찾아내었다.


2012년 이탈리아에 큰 지진이 일어났고 이때 공장이 심각하게 파손되어 더 이상 제품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폐허가 된 공장이 아니라 폼페이의 연인들이었다. 폼페이의 연인들이 소멸하지 않고 남아 전설이 되었다면 스텔라는 신화에 어울릴 만한 이름이다. 이 세상의 별이었으나 이야기 속의 별로 남고만 비운의 별 스텔라.


오픈마켓에서 해외배송 상품으로 스텔라 모카포트가 팔리고 있어 공장이 재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딱 봐도 가짜 티가 나는 조악한 물건들이다. 스텔라의 모카포트에는 몇 가지 모델이 있었는데 내가 구입한 제품은 빠시오네라는 모델이다. 정열이란 뜻이다. 모델별로 일일이 검색을 해보지는 않았으나 스텔라 모카포트의 중고가는 모두 이십 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참 별난 일이다. 요즘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스테인리스 재질의 모카포트를 출시하고 있어 대체할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이 물건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스켓에 원두를 갈아 넣고 보일러에 물을 채운 다음 모카포트를 가열하면 진한 커피가 노즐을 통해 흘러나온다.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커피는 크레마가 사라지기 전에 쿨하게 한 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는데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는지 뜸을 들이며 마시게 된다. 크레마가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고 싶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 모카포트와 에스프레소 잔 세트는 아이가 중고 판매를 극구 반대해 그대로 보관하는 중이다. 집은 여전히 포화상태지만 이것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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