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든 붉은 입맛

*양고기 전골 :연남동 서대문 양꼬치 BAR

by HERMITAGE


연남동을 하릴없이 걷는다. 갈증을 찾아 목을 매는 건지 무얼 찾고자 여기까지 오는 길을 충분히 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지 않는 도로와 구성을 달리하는 골목,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제대로 놓인 자전거 길이 딛고 선 자리다. 갈증을 참아낸 지 어언 사십팔분이 흘렀다. 멈춰 설 줄 모르던 거리는 오 킬로 하고도 삼백구십 미터, 지금까지 중 최단 시간이다. 옷가지와 몸은 한껏 젖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달려올 생각은 없었는데, 다만 끝까지 몰아세워보고 싶었다. 정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국물을 참기가 어려워 고르기에 유리한 날씨다. 뭐가 됐든 녹진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무엇이든 그게 어디까지나 시원하게 만드리라는 확신이 든다. 빨갛거나 하얗고 나아가 뽀얗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까지.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마다 헛헛해지는 입안엔 자극이 필요했다. 겨울에서 봄이, 그리고 문턱에 다다른 여름이 그랬다. 본능적인 허기와는 달리 떨어지는 입맛을 붙잡아 놓고 싶다.


망원동에서 합정역, 그리고 홍대 입구와 상수동, 당인동을 지나 미처 가보지 않았던 골목 사이사이를 거닌다. 어느 날에는 바람이 불었다가 멈추기를 반복했고 밤이 되기도 했다. 낮에 햇살은 점점 길어지다 뜨거워졌고 어느새 그러기를 멈췄다. 크기는 다시 같아지고 조금 이르게 한쪽이 줄어들기를 시작할지 모른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기에 가장 유리한 걷기다. 지나쳐 보내는 한강을 오랫동안 관람할 수 있는 자전거도 좋지만 곱씹어 걸을 수 있는 길 위에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하던 하릴없는 일들을 진득하게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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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허기는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입맛을 원망할 필요도, 기약 없는 기다림도 없다. 간단하지만 무겁지 않은 고민이 결국 무겁고 빨간 것을 떠올린다. 자극은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영역이 되었다. 명동의 어느 뒤안길을 지날 때 느껴지는 것과 닮은 붉은 향신료가 코를 찌른 것처럼 고개를 들어 위층을 본다. 꽤나 널찍한 명동 골목에는 유명 브랜드의 火鍋(훠거) 안으로 들어가는 八角(팔각)과 花椒(화자오) 같은 것들이 다채롭게 버무려져 나는 빨갛고 자극적인 향이라면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쩐지 이름에서 오는 느낌과 인상과는 다른 종류의 향이 난다. 그건 아마 유행처럼 번지다 스며든 ‘마라’이기 때문일까. 붉게 피어난 국물이 번져 놓은 냄새일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후 한동안은 평소보다 북적였으리라고만 생각했다. 한창이던 예전과는 닿는 비율이 달라 꼭 이쪽으로 걸어본다거나 두드리고 올라가는 일이 잦지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다만 종종 멀리에서도 창은 언제나 양쪽 모두 환하게 열려있었고 그건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극해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처럼 보였다. 손에 쥔 휴대폰을 세상 곳곳에 있는 장소를 찾는 창으로 확인했다면 후각을 자극해 시선을 모으는 기능을 똑똑히 한다. 별생각 없던 사람마저도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적응된 자극을 필요로 하는 본능을 깨운다.


거리를 몇 번 더 돌아보고 나면 차단봉까지 펼쳐놓고 늘어선 웨이팅에 시선을 몇 번 빼앗기는 것 이외에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을 서성이거나 지난날을 돌이켜 볼 일은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날은 점차 더워졌고 붉게 물들던 그 일이 이제는 낯설어질 때 즈음이었다. 충분히 적실, 적셔진 다음에도 무던히 입을 향과 맛으로 색칠할 수 있는 녹진한 국물이 불현듯 떠올랐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인덕션의 은은하게 만만해 보이는 열기가 지속될 때 무심하게 볶아 낸 계란밥을 한두 차례 덧칠하듯 오염시키고 나면, 그러는 사이 갈증으로 달아오른 열기를 차갑거나 무거운 음료로 몇 번을 씻어내고 난 후에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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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종종 추가하거나 기본을 주문한다. 치열한 거들기를 돕는 짜사이는 적당히 익었다. 차라리 다른 메뉴와의 혼합으로 비교적 이름에 명시된 메뉴를 골라본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국물이 있던 날과 없던 날, 해장을 바라던 순간들과 그렇지 않은 날들로 구성된 기억이다. 맛은 언제나 어렴풋했고 선명함을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술맛이 날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는 코팅되는 맛에 점철되기 시작하면 감각은 무뎌지고 밖의 계절을 거닐던 사건은 그대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산하지 않은 사람들이 공원에 얼마나 앉아있는지 어디를 향해 걷는지를 관찰하기는 어려워졌다. 해소된 갈증 대신 기름칠 한 자극을 한껏 머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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