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부터 지속되는 묘한 우울로 고생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먹고 있는 약이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서 일종의 부작용으로 가라앉은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이것 때문인지 근 일주일간 운동 나가는 것이 그리 신나지 않고 귀찮다. 뭐랄까, 머리로는 운동의 목적과 필요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상태다. 오늘도 축 늘어지는 몸을 겨우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어제는 한여름 날씨 더니 오늘 오후 2시쯤에는 하늘에 구름이 가득 끼고 바람이 불어 꽤 추웠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바람이 자꾸 목으로 새어 들어와 오들오들 떨었다. 가뜩이나 나오기 싫었는데 찬바람에 빈정이 상할 뻔했다.
2020.05.05 매일 걷기 22일차_ 마스크를 써도 확실히 우울한 표정은 감출 수 없다
자전거를 파킹해 놓고 내키지는 않지만 걷기 시작했다. 거의 인공 로봇처럼 걷기 운동을 수행했다. 감정은 전혀 없고 오로지 네 바퀴 걷기 운동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소설을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김애란 작가의 '입동'이라는 단편이었다. 여자 성우분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내용이 참 우울했다. 중간쯤 들었을까? 계속 듣다가는 가뜩이나 바닥을 치는 기분이 더 우울해질까 봐 껐다. 이어폰을 빼고 아무 생각 없이 걷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모든 날들이 형벌처럼 느껴졌다. 괴로웠지만 약의 부작용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냥 참아낸다. 인터넷으로 내가 먹고 있는 약의 부작용을 찾아봤더니 보통은 식욕부진, 두통, 어지럼증 등이 나타난다고 했다. 나처럼 무기력과 권태를 느끼는 것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벌써 3달째 이 약을 복용하는 시기에만 나타나는 감정이라... 스스로는 부작용으로 확신하고 있다.
분명 걷기 운동 시작 후 2주 동안은 기분도 일정했고, 제법 활기찼다. 그런데 기분에 변화가 온 날을 보니 이번 달 약 복용 시기와 거의 맞아떨어졌다. 임신을 성공하기 전까지는 매달 약을 먹을 수밖에 없어서 암울했다. 매달 기대했다 실망하는 것도 지치는데...
이제 이틀만 약을 더 먹으면 이번 달은 끝이다. 과연 3일째부터 드라마틱한 감정의 고양(?)을 느끼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색채 없는 감정으로 공원을 두 바퀴째 걷는데 온통 회색빛이던 하늘이 마법을 부린 것처럼 화창해졌다. 구름이 잠깐 사이에 모두 물러나고 푸른 하늘이 속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빛 때문에 공원 전체가 반짝반짝 빛났다. 너무 아름다워 감탄을 하면서도 놀랍도록 무기력하고 다운되어 있는 내 감정에 놀랐다.
마지막 바퀴를 걸을 때까지도 계속해서 하늘은 푸르렀고, 공원은 아름답게 빛났다. 아무 생각 없이 공원에 붙박이처럼 꼼짝없이 서 있고 싶었다. 내가 나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존재하고만 있어도 충분한 상태로 가만히 있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빨리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놀랄 것도, 상처 받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이 평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