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퇴근길이었다. 필요하는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동네 인근 마트 문을 들어섰다. 그 마트는 저녁 마감 무렵이면 특정 상품을 대폭 할인해 판매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세일 판매 코너에서는 모 제조업체의 당면을 반값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잡채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쉽게 먹을 수 없었던 터라더욱더 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더군다나 '길에 떨어져 있었도 주울까 말까 망설인다'는500원 동전 한 닢에 잡채 한 봉지라니 이는 분명히 손쉽게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고주저하고 말 것도 없었다.
욕심 같아선 남아 있는 상품 다 쓸어 카트에 담고싶었다. 하지만 섣부른 욕망 억누르고 일단 10 봉지 만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더군다나 끓는 물에 5분이라니 이거야말로 라면 끓이듯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잡채여서 기대는 더욱더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집에 도착 '부랴부랴' 봉지 뒷면에 기재된 조리방법대로 잡채를 만들어 봤다.
냄비에 일정 양의 물을 붓고 팔팔 끓여 당면과 건더기 수프를 넣었다. 당면이 잘 풀어지도록 젓가락으로 휘저어가며 5분 정도 (정확히 말하면) 당면이 적정하게 익을 때까지 삶았다. 그리고 채어 걸러 물기를 쪼~옥 뺐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은 구멍이 촘촘한 채에 걸려야 건더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삶아낸 당면에 건더기 수프를 버무려 놓으니 먹음직스러운 당면이 되었다
물기를 쪼~옥 뺀 당면과 건더기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액상수프와 참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런 다음이리 비비고 저리 비비고야무지게비벼 접시에 담아놓으니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삼켜지는 먹음직스러운 당면이 되었다.
그런데 단1봉의 잡채만으로는 양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고 뭔가 허전함도 있었다. 생각한 끝에 밥을 얹어 잡채밥으로 먹으면 더 좋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예쁜 접시에 밥과 당면을 매치해 놓으니 웬만한 식당의 잡채밥 못지않은 비주얼이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 500원짜리 잡채밥을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품격으로 아주 맛있게 먹었고 이런 잡채 가 아직도 9봉 남아있고 그래서 가끔씩 해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행복감까지 밀려왔다.
사실 잡채는 우리나라의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각자 기호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기본적으로 채소, 버섯, 고기와 당면이 어우러진 우리 고유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음식이다.
이 세상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리 없다. 음식의 맛을 내는 특제 양념은 뭐니 뭐니 해도 정성이고 유명 맛집의 양념도 알고 보면 그들만의 정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성은 곧 공을 많이 들여야 하고 공을 들이려면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데 잡채가 바로 그런 음식이다.
완성된 잡채밥
언뜻 보면 서민적인 것 같으면서도 아무 때나 해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 잡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잡채를 어린 시절 내 생일 때면 꼭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수 진성이 애절하게 부른 굶주린 배 물한바가지로 채울 만큼의 가난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넣어 음식을 해먹을 만큼 잘 살지도 못했던 시절의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무슨 능력에서였는지 내 생일 때면 손수 만드신 당면을 내 입에 넣어 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마의 능력 그런 거는 알려고도 알 필요도 없이 그저 맛있게만 먹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니 비로소 엄마의 그때그 능력은 바로 자식을 향한 사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신지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비록 사랑으로 삶으시고 정성 들여 버무려 주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엄마표 당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날 그 대기업표 가공 당면이라도 맛있게 먹었을 수 있었음에 나는 행복했다는것을 저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