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울적한 날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비슷한 감성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영화 'JSA'에서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광석이는 왜 일찍 죽었다니?’”
“야! 광석이를 위해 딱 한잔만 하자!”
그 대사를 듣고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진짜로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름이 아직도 거론된다는 것,
그의 음성이 여전히 퍼지고 있다는 것,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깨어난다는 것
살아 있는 자로서 그것은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 AI의 발달로 인해
고 유재하 씨의 목소리로 신곡이 나오고,
김광석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화면 속에서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소름이 끼치고,
고인에 대한 모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정말 원해서 노래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원해서 기타를 치고,
대중 앞에 나와 기계가 만든 자신의 모습으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명곡과 명작은 고인들이 남기고 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선물을 곱씹어 삼키며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왜 세상을 떠난 그들을 과학이 다시 깨우려 하는 걸까?
정말로 고인들이 다시 살아나길 원하는 걸까? 아니면 돈의 흐름에 맞춘
사업가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강령술 같은 것일까?
“예술은 인간이 남긴 흔적이며, 그 흔적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감동이 깃든다.”
우리는 그들의 예술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의 목소리와 감성은 이미 우리 안에 살아있으니까.